봄철 황색공포의 주범은 풀뿌리까지 캐먹는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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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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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의 고향’ 몽골을 가다

▲ 몽골 울란바토르 서쪽 250km지점 초원지대에 형성된 모래사막 엘센타사르하이는 몽골 전역에서 진행 중인 사막의 실태를보여주고 있다. 5일 오후 이곳을 찾은 본보 김용석 기자(왼쪽)가모래사막을 살펴보고 있다.엘센타사르하이=박영대 기자
▲ 몽골 울란바토르 서쪽 250km지점 초원지대에 형성된 모래사막 엘센타사르하이는 몽골 전역에서 진행 중인 사막의 실태를보여주고 있다. 5일 오후 이곳을 찾은 본보 김용석 기자(왼쪽)가모래사막을 살펴보고 있다.엘센타사르하이=박영대 기자
염소비중 15년새 2배 이상 늘어… 초원 급감

사막화 가속… 10년전 국토의 41%서 72%로

황사 최근 10년간 年평균 7.7일 발생

‘봄의 불청객’ 황사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연간 황사 발생일수는 평균 7.7일로 과거(1973∼2000년) 평균(3.6일)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한반도를 덮치는 황사의 절반가량은 몽골에서 발현한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 국토는 10년 전 전체의 41%에서 최근 72%로 넓어졌다. 이에 따라 최근 몽골의 황사 발생은 1960년대보다 3, 4배 증가했다. 한국과 몽골은 멀게는 2000km가량 떨어져 있지만 황사와 사막화 문제로 연결된 ‘환경 이웃’이다. 기자는 사막화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3∼6일 몽골을 방문했다.



○ 염소 수 늘어 사막화

“캐시미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염소 방목을 장려했던 정부 정책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몽골인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다가 엉뚱한 결과를 빚은 것이죠.”

5일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울란바토르호텔에서 바야르바트 국가사막화방지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 사막화의 원인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염소의 연한 털로 만든 고급 옷감 캐시미어가 몽골 사막화의 원인이라니, 무슨 얘기일까.

한반도의 8배 넓이인 몽골 초원에서 유목민들이 방목하는 양, 염소, 소, 말 등 가축이 4400만 마리에 이른다. 10년 전인 2000년보다 1400만 마리나 늘었다. 964만 마리에 그쳤던 1918년과 비교하면 4.5배가량 늘었다. 특히 캐시미어를 생산할 수 있는 염소가 크게 늘었다. 전체 가축 가운데 염소 비중은 1990년 20%에서 2005년 43%로 급상승했다.

가축 수가 초지의 수용능력을 벗어나자 황폐화가 시작됐다. 풀뿌리가 지표면을 잡아주지 못하니 표토가 쉽게 유실됐다. 포슬포슬한 상태가 된 모래는 바람이 불면 쉽게 날린다. 이런 모래가 한국까지 날아와 황사가 되는 것이다. 바야르바트 사무총장은 “너무 많은 가축을 방목하는 바람에 생겨난 초지 면적의 감소는 지구온난화, 자원 난개발 등과 함께 몽골 토지를 급격히 황폐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며 “현재 조건에선 앞으로 10년간 사막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염소는 다른 가축과 달리 풀뿌리까지 캐먹어 초원을 망가뜨린다”며 “사막화 방지를 위해 염소 수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급격한 자유화가 과방목 가져와

유목민이 키우는 가축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250km가량 떨어진 어버르한가이 지역 초원지대를 찾아가 6년째 이 지역을 이동하며 살고 있는 유목민 오치르바트 욘돈(45), 알탄투야 도르치 씨(44·여) 부부를 만났다.

유목민의 아들인 욘돈 씨는 10년 전만 해도 부모처럼 유목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우물을 뚫는 기술자로 일하며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했다. 그러나 1990년 민주화 이후 갑작스러운 변화로 일자리를 잃고 유목생활에 뛰어들었다.

공산주의국가 시절엔 가축 수를 통제했지만 이 기능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저마다 가축을 크게 늘리는 일이 벌어졌다. 가축 수가 초지의 수용한계를 벗어나는 과방목(過放牧)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욘돈 씨도 부모 세대보다 약 5배 더 많은 900마리의 양, 염소, 말을 키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돈벌이는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욘돈 씨는 “서쪽에서 모래바람이 불어 사막이 점점 넓어지는 바람에 풀 먹일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미 많은 사람이 이곳을 떠났다”고 전했다.
○ 사막화, 혹한으로 인한 고통 커져

사막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몽골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욘돈 씨가 살고 있는 지역 바로 곁엔 엘센타사르하이(분리된 모래)라고 불리는 사막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고비 사막에서부터 이어진 2800km² 넓이의 모래사막으로 남→북 방향으로 사막화가 진행 중인 곳이다.

이곳에 가까워질수록 초원에는 짧은 풀이 사라지고 길게 자란 회색 풀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뻣뻣해 가축이 먹을 수 없는 하르간 등 사막식물들이다. 강풍이 불면 이곳에서 강한 모래바람이 일었다. 심할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사막화에 더해 지난겨울 혹한까지 겹쳐 몽골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몽골에선 지난겨울 주드(zud)라고 불리는 30년 만의 혹한을 맞아 전체 가축의 8분의 1가량인 640만 마리가 폐사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유목민들이 울란바토르 등 도시로 모여들면서 2차 환경피해도 생겨났다. 울란바토르 주변 보그드한 산과 바얀주르크 산에는 판잣집이 잔뜩 들어섰다. 이곳에 사는 빈민들이 가루탄을 때거나 나무를 불법으로 베어 때는 바람에 토지의 황폐화와 대기오염이 진행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몽골에서 활동하는 김용재 푸른아시아 운영팀장은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방목이 아닌 다른 생활수단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황사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울란바토르·엘센타사르하이=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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