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정 깊은 그녀, 검지가 약지만큼 길어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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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내에서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넷째 손가락이 길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동성애자도 넷째 손가락이 둘째 손가락보다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는 연구 결과가 외국에서 나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궁 내에서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넷째 손가락이 길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동성애자도 넷째 손가락이 둘째 손가락보다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는 연구 결과가 외국에서 나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성은 검지 길면 우울 - 불안한 성향”
국내 연구진 대학생 160명 대상 조사
“태아때 남성호르몬 많으면 약지 길어
개인차 커 획일화된 기준 적용 무리”

유난히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함께 걱정해주던 회사 여자 선배. 그녀의 검지(둘째 손가락)는 남보다 유달리 길다. 한편 자주 불안하고 우울해 보이는 같은 팀 남자 후배의 손가락을 봤더니 역시 검지가 길고 약지(넷째 손가락)가 다른 남자보다 짧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거나 우울해하는 것과 손가락이 무슨 상관이냐고? 앞으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으려면 손가락 길이부터 먼저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용인정신병원 이유상 박사팀은 지난달 말 열린 한국심리학회에서 “검지와 약지 길이의 비율에 따라 여러 심리적인 특성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검지와 약지 비율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외국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비율과 성격적인 특성을 조사해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 검지 긴 여성은 상대와 잘 공감해

연구팀은 대학생 16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지와 약지 길이를 조사했다. 일반적으로 남녀 모두 약지가 검지보다 조금 길다. 문제는 비율이었다. 남자의 경우 약지가 10cm, 검지가 9.4cm라면 여자는 약지가 10cm일 때 검지가 9.6cm였다. 남자는 약지가 상대적으로 긴 반면 여자는 검지가 긴 편이다. 이 박사는 “비율이나 통계 집단이 작아 보이지만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차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시 성격적인 특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검지가 상대적으로 긴 여성일수록 남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남자의 경우 검지와 약지 비율에 따른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정도를 측정하자 이번에는 남자에게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둘째 손가락이 상대적으로 긴 남자일수록 우울하거나 불안해하는 면이 늘어난 것이다. 연구팀은 공격성, 인터넷중독성 등 다른 요소도 측정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검지 대 약지 비율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사는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약지가 검지보다 조금은 길다. 자신의 약지가 검지보다 길다고 어떤 성격을 추측하는 것은 무리”라며 “문제는 다른 손가락과 비교해 얼마나 긴가 하는 비율”이라고 강조했다.

○ 자궁 속 남성호르몬이 손가락 길이 좌우

검지와 약지의 길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어떤 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학설이 있다. 이 학설에 따르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면 약지가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검지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것이 2000년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마크 브리드러브 교수팀은 “동성애자(게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 약지가 상대적으로 길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역시 태아 때 자궁에서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지난해 1월 영국 노팅엄대 마이클 도허티 교수는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관절염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관절염과 류머티즘’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유상 박사는 “여성이 양육 등을 맡으면서 아이 및 배우자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진화시켰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가락 비율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고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1998년 이 분야의 연구를 처음 공개한 영국 사우스햄프턴대 존 매닝 교수는 “개개인의 차이가 워낙 커서 함부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권준수 서울대 의대 교수도 “손가락 길이에 대한 이번 주장이 아직 학계에서 확실한 검증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손가락 길이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성격형성에는 다른 요인도 많기 때문에 자신이나 타인의 손가락 길이만 보고 성격을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밝혔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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