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 ‘지상최고 소리센서’ 귀에 빠졌다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유모세포 순응현상 모방 인공센서 첫 설계
달팽이관 기저막 소리 감지 방법 공동분석

“나이트클럽 스피커에서 쿵쾅쿵쾅 울리는 음악과 아기의 옹알이 소리가 에너지로는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아세요?”

안강헌 충남대 물리천문우주과학부 교수가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졌다. 두 소리의 에너지 차이는 무려 1조 배다. 그런데 인간은 귀 하나로 두 소리를 모두 알아듣는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소리 센서 중 이렇게 넓은 대역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것은 없었다. 인간의 귀는 ‘슈퍼 소리센서’인 셈이다.

안 교수팀은 최근 귀의 이런 기능을 흉내 낸 인공 소리 센서를 국내 최초로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손바닥만 한 칩 안에 전자회로 10여 개가 들어 있다. 안 교수의 연구결과는 미국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 7월 첫 주에 게재된다.

슈퍼 소리센서의 핵심은 유모세포. 유모세포는 귀의 달팽이관 안에 있는 지름 200∼3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의 가느다란 털이다.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가 고막을 진동시킨 뒤 귓속뼈와 막을 지나면 달팽이관의 유모세포가 이 소리를 청신경으로 전달한다.

유모세포엔 소리 전달 외에 특별한 기능이 또 있다.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는 나이트클럽에서 옆 사람의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유모세포의 ‘순응’ 현상 때문이다. 안 교수는 “유모세포는 큰 소리가 계속 들어오면 그 소리를 무시하고 전달을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모세포는 스피커의 음악 소리와 섞여 들어오는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안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유모세포의 순응 현상을 모방하면 민감한 소리센서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인공 소리센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현재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국내에는 안 교수처럼 귀에 푹 빠진 과학자가 많아졌다. 이들은 아예 귀에 대한 융합 연구회까지 만들어 함께 귀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회는 4월 말 충남대에서 물리학자, 전자공학자, 의학자 등 다양한 전공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첫 모임을 가졌다.

그간 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살아있는 상태의 귀를 연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달팽이관이 나선형으로 돌돌 말린 구조를 갖는 이유가 진동수가 낮은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불과 3년 전이다. 연구회가 의기투합한 이유도 귀를 제대로 알고 귀를 모방하기 위해서다.

연세대 물리학과 김철구 교수와 이화여대 물리학과 이공주복 교수는 3년째 공동으로 달팽이관 안의 막이 어떻게 소리를 감지하는지 물리적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유럽물리 저널 E’에 관련 논문이 실린다는 e메일을 최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논문에는 당시 명지대 교수 신분으로 연구에 참여했던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도 연구저자로 포함됐다.

인하대 전자공학부 이상민 교수는 보청기에 들어가는 전자회로를 개발 중이다. 전자회로는 소리를 증폭하고 압축하며 소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교수의 관심사는 맞춤형 보청기다. 같은 보청기를 껴도 환자마다 목소리를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목소리의 빠르기나 높낮이, 발음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전자회로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홍성화 교수는 임상 경험을 토대로 연구회에 귀에 관한 의학적·생물학적 최신 지식을 알리고 있다. 다른 연구원들은 이 정보를 자신의 연구에 바로 활용한다. 안강헌 교수는 “미래에 사람의 귀처럼 잘 들을 수 있는 청각 보조기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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