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보다 10배 단단” 생활혁명 이끈다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7분


‘지름 10억분의 1m 크기 탄소 축구공’ 풀러렌의 과학

《탄소원자 60개로 이뤄진 축구공 모양의 나노 물질 ‘풀러렌’이 최근 생활 과학에서 첨단 기술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1985년 처음 발견된 뒤 20여 년 만에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셈이다. 풀러렌 발견자인 해럴드 크로토, 로버트 컬, 리처드 스몰리 박사는 1996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바 있다.》

○ 탄소원자 60개로 구성… 탄성 탁월

풀러렌이 최근 가장 주목 받는 분야는 스포츠용품이다. 속이 빈 풀러렌은 구조적인 특징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다. 야구배트, 골프채, 테니스라켓에 딱 맞는 구조. 빠르게 휘두를 수 있고 공과 부딪쳐도 변형이 적어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할 수 있다.

고원배 삼육대 화학과 교수는 “풀러렌은 철보다 10배나 단단하다”며 “풀러렌을 섞은 금속 야구배트는 기존 금속 배트보다 타력이 5% 정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일본 골프용품사 ‘PRGR’는 골프 선수의 스윙보다 골프채 헤드가 늦게 나오는 문제점을 풀러렌을 사용해 해결하기도 했다. 헤드는 골프채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간다. 그래서 골프채를 휘두를 때 손잡이와 헤드를 연결하는 ‘샤프트’가 휘면서 선수의 의도보다 공을 조금 늦게 치게 된다. 하지만 샤프트에 풀러렌 성분을 섞으면 휘는 정도를 줄일 수 있다고 이 회사는 설명한다. 이 회사는 풀러렌을 넣은 골프채를 지난해 여름 출시했다.

풀러렌은 고체 윤활제로도 쓰인다. 기계가 닳지 않고 움직이도록 돕는 윤활제에는 대개 기름 성분인 윤활유가 사용된다. 하지만 물속에서 작동하거나 한 번 가동을 시작하면 도중에 윤활유를 보충하기 힘든 기계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풀러렌 윤활제를 사용한다.

고 교수는 “풀러렌은 지름 1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공과 다름없다”며 “기계 사이에 작은 구슬이 굴러다닌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백 화장품에도 풀러렌이 쓰인다. 속이 비어 있는 풀러렌은 활성산소를 잡아 가둔다. 활성산소는 피부를 산화시켜 노화를 일으키거나 피부를 어둡게 만드는 멜라닌 색소를 만든다. 국내 화장품회사 ‘미샤’는 풀러렌을 1% 이상 함유한 미백 화장품 ‘사이언스 블랑’을 2월 출시했다.

○ 값 내려 태양전지 등 활용폭 넓어져

풀러렌은 태양전지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태양전지는 태양에너지를 전자에 전달한 뒤 다시 전기로 바꾼다. 풀러렌은 속이 빈 안쪽에 전자를 잘 가두기 때문에 햇빛을 잘 받게 한다. 태양전지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이광희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올해 미국에서 풀러렌을 사용한 태양전지가 출시될 예정”이라며 “국내에서도 원천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2, 3년 안에 충전용 태양전지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풀러렌이 널리 쓰이게 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격 하락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전에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풀러렌을 만들어 가격이 높았지만 2, 3년 전 일본이 풀러렌 대량생산 기술을 개발하며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고 교수는 “5년 전만 해도 풀러렌 1g이 30만∼40만 원에 거래됐는데 요즘은 5만 원 정도”라며 “지금은 연구용은 물론 산업용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택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은 “이제 풀러렌은 외국에서 수입해도 값이 싸기 때문에 싼 가격에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할 시기는 지났다”며 “앞으로는 풀러렌을 응용한 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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