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웅성불임’ 생산량 늘리는 데 역이용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2분


자손을 만들지 못하는 불임 현상이 역으로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

고추나 벼, 옥수수 같은 작물의 꽃에서는 간혹 수술이 꽃가루를 만들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웅성(雄性)불임’이라고 부른다. 사람으로 치면 고환이 정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웅성불임 식물은 외부에서 정상 식물의 꽃가루가 들어와야 비로소 수정이 이뤄진다. 수술이 꽃가루를 만들지 못해 비축된 에너지는 외부 꽃가루와 수정이 이뤄진 뒤 씨앗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결국 정상 식물보다 더 많은 씨앗을 생산할 수 있다.

서울대 농생대 김병동 교수팀은 고추에서 웅성불임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웅성불임이 일어나지 않는 애기장대에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웅성불임 애기장대는 보통 애기장대보다 씨앗을 더 많이 만들 것으로 이 연구팀은 예상하고 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식물분자생물학’ 3월호에 발표됐다.

웅성불임 식물은 자신의 꽃가루가 자신의 암술에 수정(자가수정)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웅성불임 식물의 자손은 항상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섞인다. 다른 종의 꽃가루가 날아와 잡종이 생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보통 잡종 작물은 순종보다 수확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30년대 미국에서 잡종 옥수수의 수확량이 순종 옥수수보다 60%나 증가했다. 현재 고추와 무, 배추 등 주요 채소는 잡종으로 재배되고 있다.

결국 웅성불임 작물은 잡종 자손을 만들 뿐 아니라 씨앗도 더 많이 생산해 수확량을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자가수정을 막기 위한 식물의 전략으로 웅성불임 외에 ‘자가불화합성’이라는 현상도 있다. 암술이 자기 꽃가루와의 수정을 아예 거부하는 것.

일반적으로 암술에 꽃가루가 묻으면 꽃가루관이 생겨 이를 통해 꽃가루가 암술 내부에 있는 난세포로 들어가 수정이 이뤄진다.

멕시코국립대 펠리페 크루즈가르시아 교수팀은 자가불화합성 현상이 일어나는 담배는 자신의 꽃가루가 암술에 묻으면 특정 단백질을 분비해 꽃가루관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달 29일 미국 식물생물학회에서 발표됐다.

현재 자가불화합성 현상은 무나 배추의 잡종 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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