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 팔지 마라… 스티브 잡스 ‘PT의 마술’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서류봉투서 노트북 꺼내며 ‘얇죠?’…

구글 맵으로 직접 커피 주문 ‘좋죠?’

이달 9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웨스트 센터.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 기조연설을 위해 강단에 올라섰을 때 그를 기다리던 5200여 명의 청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청중은 애플의 신제품인 3세대(3G) 아이폰을 설명하는 잡스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흡사 콘서트장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세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귀재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이 분야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를 제쳤다는 평가도 많다. 청중을 휘어잡는 잡스 회장의 프레젠테이션에는 어떤 ‘마법’이 숨어있는 것일까.

○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비법은?

전문가들은 스티브 잡스를 모델로 한 다양한 프레젠테이션 방법론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소개하는 첫 번째 비법은 ‘발표자가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의 저자인 김경태 C&A엑스퍼트 원장은 “잡스 회장은 화려한 슬라이드를 사용하지만, 절대 자신에게서 청중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잡스 회장은 자신의 말에 앞서 슬라이드 다음 장을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슬라이드 내용도 최대한 단순하게 꾸민다. 심지어 제목 앞에 숫자를 붙이지도 않는다. 청중이 다음 발표 순서를 예상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는 발표자가 슬라이드를 읽는다는 느낌을 피하고, 발표자가 발표의 주도권을 가지며,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는 노하우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청중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준다.

잡스 회장은 지난해 아이폰을 소개하던 중 구글맵 기능으로 직접 주변의 스타벅스를 찾아 전화를 건 뒤 커피 수천 잔을 주문해 청중을 놀라게 했다.

올해 1월 두께가 1.93cm에 불과한 노트북컴퓨터 ‘맥북 에어’를 소개할 때는 서류봉투에서 제품을 꺼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레젠테이션 전문가인 한정선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잡스 회장은 청중에게 경청을 강요하지 않고 청중이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유도한다”며 “청중에게 뭔가 세상이 나아진 것 같다는 믿음을 심어줄 정도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지독하게 연습한다.

전문가들은 잡스 회장의 연설은 좋은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구성원이 잘 단련돼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한다. 이는 발표자, 슬라이드, 무대효과 등이 한 치 오차 없이 기능할 수 있도록 몇 개월에 걸쳐 연습한 결과다.

○ 맹목적 모방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잡스 회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무조건 모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정장을 입고 투자유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라면 잡스 회장과 같은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업계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불리는 웰콤의 유제상 부사장은 “잡스 회장은 창조와 자유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라며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맹목적으로 잡스를 따라 하다가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사장은 “슬라이드 작성, 이야기 구성 등 잡스의 노하우를 참고하되 이를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게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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