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세종기지 대원들 건강 관리 어떻게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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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 대원 2명이 세찬 눈보라를 뚫고 기지를 순찰하고 있다. 남극의 겨울철인 3∼9월은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세종기지 대원 2명이 세찬 눈보라를 뚫고 기지를 순찰하고 있다. 남극의 겨울철인 3∼9월은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세종기지 주치의가 센서를 대원 몸에 갖다 대면 서울의 의사에게 진료기록이 전송된다. 사진 제공 고려대 의대
세종기지 주치의가 센서를 대원 몸에 갖다 대면 서울의 의사에게 진료기록이 전송된다. 사진 제공 고려대 의대
■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 건강 관리 어떻게

극도의 고립감… 극지 우울증 극복 최대 난제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남극의 겨울은 24시간 밤이나 다름없어요.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이죠. 눈 폭풍이 불어 바깥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해요. 그럴 때면 웬일인지 한동안은 대원들의 말수도 줄고 결국은 각자의 세계에 틀어박힙니다.”

극지 전문가인 김예동(전 극지연구소장), 장순근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자신이 경험한 남극의 겨울을 이렇게 기억한다. 20차례 이상 남극을 다녀온 그 역시 초반에 같은 경험을 했지만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만 해도 몸을 다쳐도 간단한 수술조차 엄두를 낼 수 없었다. 2005년 전기톱에 다친 대원을 대상으로 처음 수술을 실시할 때도 기지 내 생물 실험실에서 가져온 ‘동물용’ 실험장치로 수술용품을 대치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 추우면 더 아픈 질환에 고생

극지연구소 의료 자료에 따르면 사고를 제외하고 지난 20년간 세종기지 대원들을 가장 괴롭힌 질환은 소화불량 같은 소화기 장애, 근골격계 통증, 피부병 순이다. 10차 월동대 주치의인 이명주 씨와 18차 주치의인 홍종원 씨 보고서에 따르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치과 질환도 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이들이 남긴 자료에 따르면 세종기지에서는 한 해 200회 정도의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비율로만 보면 세종기지 대원들은 일반 사회생활에서 얻는 질환과 거의 유사한 질병을 앓는다. 문제는 극지에서 더 악화되는 질환. 특히 근골격계 질환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근막통은 영하의 추위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통증이 심해진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보이는 이 질환은 전문의 도움 없이는 쉽게 치료하기 힘들다.

어금니에 덧씌운 금이나 은 조각이 떨어져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코나 입으로 흡입한 찬 공기가 어금니 등에 붙어 있던 금속을 수축시켜 떨어뜨린다. 치료를 받으려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꼬박 1년을 기다리기 일쑤다.

○ 정신적 스트레스 연구해야

그러나 이보다 큰 문제는 정신적 스트레스. ‘6개월 낮, 6개월 밤’이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대원이 꽤 많다. 특히 하루 종일 컴컴한 겨울이 되면 대원 간 대화가 급격히 줄어든다. 식욕이 없다고 호소하는 대원도 늘어난다.

김 책임연구원은 “바다가 얼고 기상이 악화될 경우 사고가 나도 쉽게 도움을 받기 어려운 탓에 대원들은 언제 사고가 날까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작은 상처가 나도 민감해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남극에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 일부 국가는 심리전문상담가까지 파견해 놓고 있다.

○ 국내에도 극지의학 연구 시동 걸려

5월 고려대 의대에서 결성된 극지의학연구회는 이처럼 극지 연구자들이 겪는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다. 이 학교 의대 재활의학과 강윤규 교수와 병리학과 김한겸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극지연구소 강성호 극지연구응용부장의 말을 듣고 처음엔 놀랐다고 한다. 세종기지 대원들이 오랫동안 전문적인 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것. 대원들과 함께 파견되는 주치의가 환자를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새내기 의사라는 얘기에 더 놀랐다.

세 사람은 극지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의학적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기로 했다. 생화학과 박길홍 교수 미생물학과 송진원 교수도 힘을 보탰다. 정신과, 내과, 응급의학과 교수 20여 명도 뜻을 모았다.

10월 연구회는 극지연구소와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세종기지에 파견될 주치의 김정호 씨가 파견에 앞서 서울 성북구 고대 안암병원에서 수련의(인턴) 과정을 밟고 있다. 김 씨는 9주 동안 내과, 재활의학, 응급의학 등 극지환경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연구회장인 강 교수는 “올해 초부터 원격진료 체계를 이용해 전문적인 의료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의사의 경험은 여전히 대원의 건강과 직결된다”며 “다음 월동대 주치의부터는 정신과 등을 추가해 훈련 일정을 3개월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 고려대병원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대원들 건강 수시로 원격 진료

남극 세종과학기지 대원이 감기에 걸리면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병원 모니터엔 이상 신호가 뜬다.

고려대 미래도시유헬스사업단장 박길홍(생화학 교실) 교수는 “세종기지에서 활동하는 대원들의 건강 정보를 24시간 전송받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세종기지 대원들도 올해 초부터 서울에 있는 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게 됐다. 올 2월 세종기지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시스템’이라는 원격진료 체계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혈압과 맥박, 혈당, 체지방, 호흡, 심전도 같은 생체신호를 측정해 전송하는 의료체계. 원래는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지역 주민과 몸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개발됐다.

세종기지의 원격 진료는 수시로 이뤄진다. 정기검진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실시된다. 주치의는 서류가방 크기 원격진료 장치에 연결된 센서를 아픈 대원의 몸에 갖다 댄다. 센서는 혈압과 맥박, 체지방, 호흡, 심전도 같은 주요 생체 신호를 감지해 낸다.

이 정보는 곧장 인공위성을 거쳐 칠레와 미국을 지나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 설립된 원격진료센터로 보내진다. 혈압 같은 간단한 수치는 물론 전자 청진기가 측정한 맥박, 호흡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서울의 의사들은 이를 보고 현지 주치의와 함께 대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고려대 진단검사의학과 임채승 교수가 응급의학과 홍윤식 교수가 이를 돕고 있다. 필요할 경우 웹 카메라를 보며 직접 검진을 할 수도 한다.

세종기지의 원격진료 체계 도입을 추진한 박 교수는 “시간을 다투는 응급 상황에서 의사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육지로 후송이 어려운 남극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응급 환자를 검진한 경우는 없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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