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향]수험생 ‘성형’ 권하는 사회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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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아 자꾸자꾸 먹었다. 먹고 졸고 먹고 자니 하루가 다르게 살이 쪄 갔다. 내 생의 유일한 비만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허기는 형벌이었다. 그것은 병이었으며 또한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삶에 대한 몸의 저항이기도 했다.

지금은 내 조카가 고3이다. 20년도 훨씬 넘게 흘렀건만 여전하다. 수차례 입시제도는 바뀐 거 같은데, 바뀐 게 없는 것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살벌하고 황폐한 판에서 무력해지고 무례해지고 무거워진 젊음을 위로할 길 없어 그저 안쓰러워할 뿐.

특별할인 ‘수능 마케팅’ 판쳐

바뀐 게 있다면 그렇게 병적으로 살찐 그때의 나 같은 학생들이 ‘수험생 특별할인’이라고, 지방흡입술을 받으라는 성형외과의 광고에 혹하는 것이 다를까? 요즘은 대학입학 전인 2월까지가 수험생 특수란다. 쌍꺼풀을 하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만일 내가 지금 고3이어서 지방흡입을 권유받았다면?

고3이 지나자 그제야 나는 허기에 시달리지 않았다. 갑자기 찐 살은 하루하루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몸’을 배웠던 것 같다.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있어 존중해 주지 않을 때 슬퍼하고 반항하고 아파하고, 때로는 체념까지 하는 몸! 그 몸의 소리를 듣는 걸 배우기도 전에 요즘 성형외과에서 권한다는 지방흡입술을 받았다면 내 몸은 또 얼마나 무력하고 무참하게 학대당했을까.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야생동물이 야성을 잃어버리듯이 자연스러운 자기의지와 성향을 잃어버리는 걸 테니까.

나는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성악가 조수미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대 그의 외모 때문이 아니다. 노래에 몰입해서 마음껏 노래가 되는 그 도발을 좋아한다.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통로를 찾은 인간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그런데 아직 자신감의 씨앗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비웃음으로 돌아올까. 그 말은 진짜지만 과정이 생략된 공허한 말일 테니까.

더구나 여기는 성형이 일상이 된 이상한 나라라고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는, 멀쩡한 사람도 콤플렉스를 갖게 만드는 성형공화국 대한민국이다. 못생긴 사람은 취직도 안 되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연애할 확률도 확연히 떨어진다. 외모로 성공한 연예인의 성형이 매일매일 공개된다. 매일매일 화면만 보고 사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나도 한 번쯤’이란 유혹을 떨치기 어렵지 않을까. 아마 내 아이가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취직도 안 된다면 여기저기서 호객행위를 하는 성형외과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건 아니다. 요즘 일부 성형외과와 피부과에서는 수험생 특별할인을 내세우며 ‘수능 마케팅’을 펼치고 있단다. 불법 환자 유치도 문제지만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기 세상을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스무 살을 아름다움에 대한 콤플렉스로 시작하게 만드는 그 노골적인 싸구려 분위기는 더 문제다.

‘외모 콤플렉스’ 떨쳐 버려야

동양적인 외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 이상한 분위기에 철저히 무력해진 젊은이들이 젊은 몸을 학대하고, 학대당한 기억을 간직한 채 수술대 위에 누워 본 몸은 또 얼마나 집요하게 성형중독의 길을 걷게 될지, 너무나 유명해진 선풍기 아줌마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일지 모르겠다.

나는 보고 싶다. ‘천연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에서 천연의 내가 부끄러우면 세상 전체가 부끄러운 거라고 믿는 부끄럽지 않은 젊음을. 천연의 내가 아름답지 않으면 세상 전체가 아름답지 않은 거라고 믿는 아름다운 젊음을. 그리고 나는 바란다. 우리 사는 세상이 그 아름다운 젊음의 오기로 정화되는 세상이기를.

이주향 수원대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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