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놀라워라 플라스틱 무한변신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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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성 플라스틱 100년 당구공에서 자동차까지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집트 출신의 카림 라시드 씨는 플라스틱 예찬론자다. 자신의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는 ‘유연성(plasticity)’ 있는 소재로 플라스틱만 한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집을 전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국내 한 업체의 의뢰로 깜찍한 플라스틱 책꽂이를 디자인해 ‘책꽂이=나무격자’라는 통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라시드 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이미 플라스틱에 중독(?)돼 있다. 플라스틱 튜브에 들어 있는 치약을 짜서 플라스틱 칫솔로 양치질을 하고 플라스틱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플라스틱테(일명 뿔테)에 렌즈까지 플라스틱인 안경을 쓰고 플라스틱(페트)병에 든 물을 마신다.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 상아 대신 쓸 당구공 재료로 개발

플라스틱이란 말은 ‘성형하기 알맞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열이나 압력을 가했을 때 성형이 가능한 물질을 통칭하는데 합성 또는 반(半)합성 고분자로 이뤄졌다.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이제 꼭 100년이 됩니다. 이런 짧은 기간에 이토록 사람들을 사로잡은 소재는 없었죠.”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 이재욱 교수의 말이다. 1907년 벨기에 출신 이민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미국에서 발명한 ‘베이클라이트’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로 만든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이다. 당구공의 재료로 쓰던 상아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그 대체품으로 선보였던 것. 온도, 습도 변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베이클라이트는 전선 피복, 전화기, 커피메이커 등의 소재로 급속히 보급됐다.

그 뒤 스타킹을 대중화시킨 나일론, 유리보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스티로폴’이라는 상표명으로 더 잘 알려진 발포폴리스티렌 등이 등장하면서 ‘플라스틱 패밀리’는 위력을 더해 갔다. 세계의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100만 t에서 현재 2억3000만 t으로 늘었다.

○ 빛내고… 데이터 저장하고…

“미래에는 자연에 있는 어떤 재료로도 구현할 수 없는 고유한 물성을 띠는 플라스틱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독일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 신비즈니스창조센터 에카르트 폴틴 소장의 설명이다. 지난달 24일부터 31일까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플라스틱·고무 전시회 K2007에서 선보인 ‘라이트론’이 대표적인 예. 전도성 플라스틱 필름 사이에 안료 결정이 채워져 있는 라이트론은 전류가 흐르면 결정에서 은은한 빛이 난다. 필름 두께가 아주 얇기 때문에 종이처럼 말 수 있고 적당한 모양으로 자르는 것도 가능하다. 안료 결정의 종류에 따라 여러 색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핸드백 안쪽에 라이트론 필름 조각을 붙여 놓으면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이엘코리아 김기정 이사는 라이트론의 응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대용량 저장매체도 등장했다. 미국의 인페이스테크놀로지스사는 저장 용량이 300GB(기가바이트)로 DVD 50장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홀로그래픽 테이터 저장장치를 개발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수mm 두께의 플라스틱에 레이저 펄스를 쏘아 화학 반응을 일으켜 3차원 홀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수명이 50년으로, 20년이 안 되는 CD나 DVD보다 뛰어나다.

○ 태풍에 맞서는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독일 푸렌사가 선보인 보마테름 태양 지붕은 위쪽이 폴리카보네이트, 아래쪽이 폴리우레탄 재질이고 그 사이가 비어 있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를 통과한 빛은 내부 공간에 있는 공기를 덥히지만 단열재인 폴리우레탄 때문에 열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태양열로 덥혀진 공기는 지붕의 높은 쪽으로 이동해 열교환기를 거쳐 유용한 에너지로 바뀐다. 보마테름 태양 지붕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 비해 무게가 절반밖에 나가지 않아 시공하기도 편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열릴 37개 경기장 가운데 하나인 선양 올림픽 스타디움은 새가 내려앉으며 날개를 접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관중석을 덮은 지붕이 양 날개에 해당하는데 넓이가 2만 m²로 축구장 크기의 2배가 넘는다. 유리처럼 투명한 이 지붕은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가 개발한 폴리카보네이트 ‘마크롤론’이다. 마크롤론은 충격 강도가 유리의 250배나 되므로 25mm 두께로도 태풍이나 폭설 같은 악천후를 견딜 수 있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뒤셀도르프=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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