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한국 미국行을 준비하는 젊은의사들…

  • 입력 2007년 1월 24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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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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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사들의 손재주는 미국 의사들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곧바로 미국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서울 강남의 G성형외과 양철민(38) 원장의 말이다. 수많은 국내 젊은 의사들이 한미FTA 체결 이후 미국 진출을 꿈꾸고 있다. 양 원장도 그런 의사 중 한명이다.

“한미FTA로 의사면허가 상호 인정되면 현재처럼 미국 국가고시를 본 후 4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자유로이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 의사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그는 “미국은 한국과 의료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물론 처음에는 고전하겠지만 충분히 시간을 갖고 연구하면 해결될 겁니다. 경영이나 재정 면에서 좀 취약하기는 하지만 진료 면에서는 절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안정된 기반을 마련할 겁니다.”

양 원장은 “우리 의사들이 당장은 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내 교포만도 몇 백만 명이 되기 때문에 교포 사회에 뿌리를 내린 후 미국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가고시에 응시해 실기시험 3차까지 통과한 대구 수성구의 M비뇨기과 조한진(40) 원장. 오랫동안 미국 진출을 준비해온 그에게 한미FTA는 단비와 같다.

“만약 FTA가 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에 갈 생각입니다. 레지던트 생활을 4년간 다시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선진 의료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는 “주위에 미국행을 준비하는 의사들이 꽤 많다”며 “미국의 신기술 및 선진 의료시스템과 경쟁하다보면 한국의 의료기술도 더욱 발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의사들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L피부과 박상구(43) 원장은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자녀는 미국에 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미국행을 준비 중이다.

“의사들 중에는 교육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가 많습니다. FTA가 체결돼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면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일석이조죠. FTA는 저 같은 ‘기러기 아빠’들에게 미국행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될 겁니다.”

의료보험 수가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서울 동교동 H산부인과 이소영(45) 원장은 “산부인과는 국내에서 생존 차제가 어려워 괴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현재 정부가 책정한 수가대로라면 환자를 많이 봐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어요. 한 달에 최소 16명은 분만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깁니다. 하지만 10여명뿐입니다. 요즘 80~90%의 산부인과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상 분만 같은 경우 미국은 1만 불, 우리나라 돈으로 9백만 원이 넘는데 반해 우리는 20만 원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저출산 때문에 환자가 줄어 분만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 수가는 턱없이 낮지, 사고라도 한번 나면 몇 억씩 배상해야 하지…. 누가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겠습니까.”

이 원장은 “외국에 나가 활로를 찾으려는 건 당연하다. 의사들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인”이라며 “산부인과 의사들 열이면 열, 모두 기회가 되면 미국으로 나가려 한다”고 했다.

“한미FTA 체결은 보다 큰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

의사들과 의료전문가들은 한미FTA 협의사항 중 하나인 의사면허 상호인정협정(MRA: Mutual Recognition Agreement)이 체결될 경우 많은 의사들이 미국으로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RA 체결은 양국 면허의 무조건적인 인정을 의미한다. 한국과 미국 의사들은 양쪽 국가에서 개원할 수 있고 진료 행위도 자유롭다.

인터넷 보건의료 신문인 ‘데일리메디’가 지난해 9월 서울 소재 A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설문에 응한 94명 중 87명이 한미FTA가 체결되면 “졸업 후 미국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 7명도 “기회가 되면 가겠다”고 답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많은 젊은 의사들에게 한미FTA는 보다 큰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재학 중인 대부분의 의대생들도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2월 의사가 3천 명 정도 배출되면 국내 의사 수가 9만 명에 달한다. 과포화 상태다. 미국으로 빠져나가도 국내 의료시장을 지킬 인력은 충분하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국내 의료공백 우려를 부정했다.

주 : 의사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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