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신’은 머리 한가운데 산다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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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정산 때가 되면 젊은 맞벌이 직장인 K 씨 부부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책상 위에 쌓인 카드명세서를 보고 “올해도 (카드를) 너무 긁었다”며 머리를 움켜쥔다. 전형적인 도시인인 K 씨 부부는 주말마다 대형 할인점에서 장을 보고 카드로 결제한다. 가끔 TV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뜰구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씀씀이는 전해에 비해 별로 줄지 않았다. 쇼핑을 합리적으로 하는 방법은 없을까. 쇼핑의 심리를 뇌과학으로 분석해 보자.》

○ 두 번 세 번 생각하라

미국 스탠퍼드대 브라이언 넛슨 교수팀은 사람들의 구매 행위를 결정하는 뇌의 활동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뉴런’ 1월 3일자에 발표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촬영한 결과 제품을 사기까지 상품을 보고 가격을 확인한 뒤 상품과 가격을 놓고 고민하는 3단계로 사고한다는 것.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제품의 이미지, 가격 사진, 그리고 이미지와 가격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차례로 보여 줬다.

상품을 본 직후 찍은 영상에서는 쾌락과 관련된 ‘대뇌 측좌핵’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어 가격을 보자 금전적인 손해를 느끼고 모험을 회피하려는 성질을 관장하는 ‘뇌섬엽’ 부위가 활성화된다. 마지막으로 고등사고를 관장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 부위는 상품을 샀을 때의 쾌감과 ‘지출의 고통’을 저울질해 제품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전전두엽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중요하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지름신(神)이 납시었다’는 말이 유행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값비싼 제품을 사게 만드는 ‘가상의 신’ 때문에 충동구매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왜 뇌섬엽이 두려워하는 ‘지출의 고통’을 잊고 머리중심에 위치한 대뇌 측좌핵의 유혹에 따라 가끔씩 크게 한번 ‘지르고’ 싶은 걸까.

연구팀은 반복적인 자극이 대뇌 측좌핵의 활동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제품 이미지를 반복해서 볼 경우 처음에는 제품을 사지 않으려던 피실험자의 87%가 제품을 살 용의가 있다고 뜻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 주는 홈쇼핑 광고 같은 자극에 자주 노출될 경우 충동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대뇌 측좌핵은 ‘쾌락’이나 ‘중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쇼핑 중독’이란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신용카드처럼 나중에 돈이 빠져나가는 지불수단을 쓸수록 낭비할 확률은 더 올라간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로 지불하면 뇌가 느끼는 ‘지출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무뎌지기 때문이다. 소비하려는 뇌의 욕구가 ‘현실적인’ 뇌의 활동을 이겨 실익을 따지는 고차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 할인 받으려다 오히려 과소비

대형 할인점도 과소비를 부추기긴 마찬가지. 실제로 많은 소비자가 대형 할인점에 가면 오히려 낭비를 하게 된다고 푸념하곤 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팀은 대형 할인점이나 바겐세일 기간처럼 복잡한 환경에서 충동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상품 정보를 1분 20초간 보여 주고 2분간 고민한 뒤 선택하도록 했다. 이어 다음 실험에서는 상품 정보를 보여 준 뒤 고민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 대신 여러 개의 단어를 2분간 암기하도록 했다.

피실험자들의 뇌 활동을 영상으로 촬영한 결과 끝까지 고민할 경우 정보를 종합해 사고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러 단어를 외운 상태에서는 감성과 시각 이미지, 매력을 느끼는 부위의 활동이 크게 늘었다.

결국 “떨이요” “몇 개 안 남았습니다” 같은 소리(단어)가 곳곳에서 들리는 대형 할인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소비자는 ‘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보러 가기 전 꼭 사려는 물품 목록을 작성하고 제품을 살 때도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갖자는 얘기는 결코 괜한 소리가 아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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