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한]‘공개진료’에 신음하는 환자 프라이버시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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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병동 복도. 환자 50여 명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환자가 진찰실에서 나오자 간호사는 대기자 세 사람의 이름을 한꺼번에 불렀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와 환자의 질병에 대한 대화를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이른바 ‘공개진료’의 현장이다. 이 제도는 환자의 대기시간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정작 환자들은 곤혹스럽고 불쾌하기만 하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걸 반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 백내장으로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김모(36) 씨는 “질병은 지극히 사적인 정보인데 바로 뒤의 환자가 나와 의사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적잖게 당황했다”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10월 26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립대 병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11개 국립대 병원이 모두 공개진료를 하고 있다”면서 “이는 의료법 제19조의 의사의 비밀 누설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서울대, 전북대, 경북대 병원 등 3개 국립대 병원 노사는 지난달 말 공개진료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내과 신경과 등에서는 공개진료가 사라졌지만 소아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에서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경북대병원도 안과에서 공개진료를 하고 있다.

의료진은 “공개진료를 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많이 기다려야 하고 이 때문에 더 큰 불편을 겪게 된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환자의 비밀을 지키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사가 된 사람들이 공개진료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사실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의료계 사정상 모든 진료과목에서 중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시되는 산부인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같은 곳에서부터라도 공개진료를 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진한 교육생활부·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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