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힘들고 까다로운 ‘조울증’환자 늘고 있다는데…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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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주식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30대 초반 회사원 박모(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씨. 그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심한 우울증에 걸려 휴직했다. 휴직한 지 2개월이 지난 요즘 그는 활기가 넘친다. 새 사업 구상에 매달리면서 말수가 갑자기 늘고 웃음도 잦아졌다. 사업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 넘쳐 있다. 박 씨는 2주 동안 잠도 거의 안 자고 밤새 일하다 가족들의 손에 끌려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조울증. 박 씨처럼 우울증에 걸렸다가 갑자기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반복되는 조울증 환자들이 있다. 조울증은 우울증과는 다르다. 우울한 심리가 계속되면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울증은 우울한 시기, 기분이 들뜨는 시기, 정상적인 시기가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질환이다. 극과 극을 달린다는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라고도 불리며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야누스’ 질병이란 별명이 있다. 기분이 좋은 것은 병이 아니라고 여겨 조울증에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조울증에 관심을 갖고 진단받는 사람이 늘면서 환자도 늘고 있는 추세. 조울증의 원인은 기분을 들뜨게 하는 체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기분을 침잠시키는 세로토닌 분비의 불균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명확하고 구체적인 원인은 규명되지 못한 상태다.》

○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세로토닌 분비 불균형 탓

기분이 양 극단을 달리다 보니 의사마저도 우울증으로 진단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한림대 성심병원 신경정신과 전덕인 교수팀은 2001년 1월∼2005년 12월 조울증 입원 환자 131명 가운데 27명이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전 교수는 “조울증 환자는 우울증이었다가 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울증 환자가 항우울제 등 일반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조증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나거나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3배 많고 30대 이후 중년에서 많이 발병하지만 조울증은 남녀 차이가 거의 없으며 젊은 층에서 주로 발병한다. 우울증 환자는 주로 불안, 초조, 불면증 등의 증상을 보이는 반면 조울증 환자는 몸이 늘어지거나 무기력해 일반인보다 덜 움직이고 잠을 많이 자는 증상을 보인다. 조울증의 유전성은 우울증보다 강하다.

감정 기복이 심해 우울증보다 자살 위험이 더 높다. 약을 먹거나 칼로 손목을 살짝 긋는 대신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칼로 힘줄이 끊어질 정도로 자해하는 등 극단적인 자살 기도를 한다.

가톨릭대 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과 박원명 교수는 “심리기복이 심한 사람은 조증 상태일 때 더 조심해야 한다”며 “차분하던 여성이 갑자기 카드 사용 횟수가 많아지거나 말이 많아지고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으로 변하면 조증인지를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울증에서 조증 상태가 나타나는 기간은 길지 않다. 조울증 환자를 1년 동안 관찰하면 절반은 아무런 증세 없이 정상으로 지내고 한 달 정도는 조증에, 나머지 기간은 우울증에 빠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말이다.

○ 우울증-불안 초조, 조울증-몸 처지고 무기력

조울증 치료는 우울증보다 까다롭고 기간이 더 많이 걸린다. 재발도 우울증에 비해 잦은 편이다. 재발하면 적어도 3년가량은 약을 복용해야 된다. 약물치료로는 기분을 가라앉혀 주는 기분조절제가 이용된다. 전 교수는 “약물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통상 2∼3주 이상 시간이 필요하며 처음 발병한 경우엔 최소 1년은 먹어야 된다”고 말했다.

다행히 조울증은 약물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질환이다. 가족은 환자가 잠을 제때 자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당장 좋아진다고 약 복용을 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재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므로 조심해야 된다.

조증 체크리스트
내용아니요
기분이 너무 좋아 남들에게서 “평소와 다르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들떠서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거나 말다툼한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
평소보다 잠이 덜 오거나 잠 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
평소보다 말이 많았거나 말이 매우 빨랐던 적이 있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쉽게 방해받아 하던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거나 할 일을 계속하지 못한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욱 에너지가 넘쳤던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욱 활동적이었거나 더 많은 일을 했던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욱 사교적이거나 적극적이었던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간 적이 있다.··
평소의 자기답지 않은 행동을 했거나 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또는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란에 빠뜨린 적이 있다.··
7개 이상 ‘예’라고 했다면 조증을 의심할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도록 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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