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다이어리]‘뜨거운 감자’가 된 혈우병 치료제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왜 진료가 안 된다는 것인가요?”

“우리 병원은 더는 혈우병 환자를 치료할 뜻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석 달 전에 분명히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요.”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은 아니다. 혈우병을 앓는 딸(가명 수진)을 둔 친구가 들려준 꿈 이야기다. 문제는 친구가 꿈이 현실로 될까봐 조마조마 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진이를 치료했던 K병원은 혈우병 치료제에 대한 보험급여비용 2억5000만 원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과다투여가 주된 이유였다.

세 살배기 수진이는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특이한 형태의 혈우병을 앓고 있다.

어느 날 대변에서 피가 나오고 배가 아프다고 해 K병원 응급실에 갔다. 진찰 결과는 ‘장(腸)중첩증’. 급히 수술에 들어갔다.

문제가 생겼다. 수술 후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딸이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친구는 의사로부터 여러 차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수진이는 40일 뒤 퇴원할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수진이에게 투약한 혈우병 치료제에 대한 비용이 문제가 됐다. 혈우병 치료제 가격은 병당 600만 원 정도. 40일 동안 투여된 치료제 비용만 1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K병원이 투약 기준을 어겼다며 2억5000만 원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K병원은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이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를 보면 이 법의 목적이 분명히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고 사회보장을 증진함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의사의 진료에 대한 보험급여 비용을 인정할 것인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의 생명’이라는 얘기다.

현실은 어떤가. 의사들은 보험급여비용이 삭감돼 손해를 본다며 진단과 투약을 주저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고 있다.

다시 현실을 보자. 단 한 명의 국민이 아쉬운 저출산시대다.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2억5000만 원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신현준 변호사 j00n38@naver.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