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홈피, 개인정보 줄줄 샌다

  • 입력 2006년 4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이미 3000만 명을 넘어섰다.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이들 누리꾼을 잡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이면에는 줄줄 새고 있는 개인정보가 있다. 홈페이지의 관리체계가 허술해 개인의 신상정보가 통째로 노출되고 있는 것. 이들 정보는 범죄에 사용될 수 있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도 높다.》

▽적나라한 개인정보 노출=공공기관 홈페이지는 통째로 띄워진 내부 문서를 통해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한광업진흥공사 공채 정보관리 분야에 지원한 K 씨. 주민등록번호 7704**-154****, 토익 890점, 가족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살 아래 남동생 1명 등 4명이고 광업 관련 직종을 가진 가족은 없음.”

2142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된 광업진흥공사 홈페이지에는 주민등록번호와 학력은 물론 사진까지 담긴 2004년 입사지원자의 지원서가 있다. 사진 등을 내려받으면 주민등록증 위조도 가능할 정도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는 이름,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번호, 소득, 재산 규모, 여성 가장이 된 사유 등이 담긴 여성가장창업자금 지원자 86명의 신상 정보가 떠 있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법률 상담이나 사건 제보를 위해 이들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포함된 주민등록번호가 각각 7건, 6건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대학 가운데에는 사립대가, 민간 기업 가운데는 금융업체가 홈페이지에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있는 사례가 많았다. 인하대 홈페이지에는 ‘인하대 과학영재교육원에 지원한 I초등학교 1학년 C 군. 주민등록번호는 9805**-1168***, 인천 남구 학익동 T아파트 ***동 ****호에 살고 있으며 부모님 전화번호는 016-8**-0***으로 A반에 지원했다’는 내용의 정보를 볼 수 있다.

▽당사자는 황당, 유출 기관은 당황=주민등록번호를 노출한 기관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들 기관은 노출 원인에 대해 ‘관련 부서의 실수’, ‘미삭제 예전 자료’ 등이라고 변명했다.

벤처기업 대표 4923명의 신상정보를 통째로 노출한 서울시 홈페이지의 한 관리담당자는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지난해부터 개인정보가 포함된 개편 이전 자료를 삭제하고 있는데 미처 삭제되지 않은 자료가 검색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정보가 노출된 당사자들은 이 같은 해명에 분노했다.

여성가족부에 여성가장창업자금을 신청했다가 개인정보가 노출된 이모(42·여) 씨는 “내 가정사를 다른 사람이 봤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면서 “이는 실수라는 변명 한마디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광업진흥공사에 지원했던 박모(30) 씨는 “조직 내에서도 인사 관리자들만 볼 수 있는 지원서를 공개한 광업진흥공사의 무신경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정보 보호는 뒷전인 ‘전자정부’=전문가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인(林鍾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개인정보 유출의 상당 부분은 해커가 아닌 관리자의 소홀이나 직무유기로 일어난다”면서 “정보 보호에 필요한 예산과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공공기관의 정보 보호 예산은 전체 정보기술(IT) 예산 가운데 5% 미만이다. 미국은 정보 보호에 전체 IT 예산의 10.6%를 투입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을 발의한 열린우리당 이은영(李銀榮) 의원은 “각 공공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개인정보 유출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리니지 명의 도용 등과 같은 사이버 폭력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홈피, 개인정보 줄줄이 샌다' 바로 가기

■어떻게 조사했나

중앙 행정기관 45개, 지방자치단체 16개, 정부 투자기관 및 출연기관 53개 등 114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분석했다. 또 자산 2조 원 이상 주요 상장기업 47개를 포함해 업종별 일일 평균 접속자 상위 5위 기업 150개, 대학 35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조사는 행정자치부의 ‘행정기관 홈페이지 구축·운영 지침’과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 지침을 참고해 사용자 체감도, 제작 완성도, 접속 속도 등을 통해 홈페이지 품질을 분석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뜬 서울시내 벤처업체 대표자 명단. 벤처업체 대표자 4923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담고 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