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더워져도 남극 빙하 늘어난다”…윤호일 박사 연구

  • 입력 2005년 10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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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이나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리기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남극대륙이나 그린란드 내부에서는 온난기에 빙하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극지연구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이나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리기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남극대륙이나 그린란드 내부에서는 온난기에 빙하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극지연구소
Q: 어떻게 이런 일이… A:“기온 상승 → 대기 중 습기 증가 → 극지역 적설량 증가 → 빙하 두께 늘어”

남극대륙 해안에서 빙하가 붕괴되면서 거대한 얼음이 바다에 빠지는 모습은 이제 영화 속 장면이 아닌 현실이 됐다. 4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는 지난 50년간 남극해안의 빙하가 녹아 해안선이 급속하게 후퇴한 사실이 발표됐다. 지구 온난화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인간이 살고 있는 육지가 바다에 가라앉고 마는 것이 아닐까. 최근 국내 과학자가 제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구가 더워짐에도 불구하고 남극의 빙하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

한국극지연구소 윤호일(44) 박사는 27일 “2년간의 연구 끝에 과거 지구 온난화 시기에 남극의 빙하가 오히려 늘었다는 증거를 서남극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1992∼2003년 11년간 그린란드의 빙하는 평균 매년 5.4㎝씩 두꺼워졌다. 두꺼워진 지역(파란색)은 내부에, 얇아진 지역(빨간색)은 가장자리에 주로 나타난다. 사진 제공 사이언스

○ 서남극 해저퇴적물 분석… 1400∼1800년 전 따뜻한 시기에 빙하 증가

과학기술부 ‘국제공동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 성과는 ‘서남극 지역 온난화에 따른 계곡빙하의 전진’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지구과학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 ‘제4기 연구’ 내년 봄호에 실릴 예정이다.

윤 박사팀은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있는 서남극 바로 앞바다 밑을 거대한 드릴로 파고 해저퇴적물을 채취한 후 이를 분석했다. 이 퇴적물은 과거 남극대륙에 있던 빙하가 바다에 흘러들어 쌓인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간직한 ‘타임캡슐’인 셈.

연구팀이 타임캡슐을 연 결과는 놀라웠다. 1400∼1800년 전 남극대륙의 서쪽이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가 매우 따뜻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지역의 육지를 덮고 있던 빙하가 점차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해저퇴적물에서 2가지 증거를 찾아냈다. 하나는 다른 시기에 비해 빙하가 남극대륙에서 운반해 온 자갈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해저에 자갈이 많이 쓸려 왔다는 것은 대륙에 빙하가 많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빙하 근처에서만 사는 플랑크톤의 사체들이 늘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온난화 시기에 빙하가 증가하는 이유는? 윤 박사는 “기온이 상승하면 이 과정에서 대기 중의 습기가 급격히 증가한다”며 “이 습기가 남극처럼 찬 지역에선 눈으로 내린다”고 말했다. 많은 양의 눈이 쌓이면 이 지역의 빙하가 점차 증가하게 된다는 것.

사실 남극대륙에서 온난화 시기에 빙하가 늘어난다는 증거가 처음 발견된 것은 2년 전이다. 미국 해밀턴대 유진 도맥 교수가 동남극에서 지금부터 4000∼6000년 전에 대륙 빙하가 바다 쪽으로 전진했다는 사실을 밝혀 지질학 전문지 ‘지올로지’에 발표했다.

○ ‘빙하 증가론’ 증거 잇따라 발견…‘온난화 해빙론’에 거센 도전

최근에는 노르웨이 지구해양연구 및 작전해양학 몬-스베르드루프센터의 올라 요한센 박사팀이 1992∼2003년에 인공위성으로 측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린란드 내부의 빙하가 1년에 5.4cm씩 두꺼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 온라인판 21일자에 실렸다.

그렇다면 남극이나 그린란드 내부에서 빙하가 증가하는 정도는 얼마나 될까. ‘사이언스’ 21일자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리처드 앨리 교수팀이 최근 빙하 연구를 종합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효과가 아직은 해안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정도에 못 미친다.

앨리 교수팀은 “현재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는 게 대세”라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현재보다 2배 늘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그린란드 빙하는 3000년 내에 완전히 사라져 전 세계 해수면이 7m씩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윤 박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난기에 빙하가 증가한다는 주장은 가설에 불과했지만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빙하가 녹는다는 게 대세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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