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바라 본 ‘동물의 정치’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08분


개미의 세계에서는 흔히 강력한 여왕개미 한 마리가 ‘독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러 여왕개미가 사는 개미 왕국도 있다. 왕국의 초창기에는 2∼50마리에 이르는 여왕개미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알을 많이 낳는다. 일개미들이 충분히 늘어나면 사람과 비슷한 ‘선거철’이 다가온다. 일개미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 ‘투표를 하는 것처럼’ 가장 뛰어난 여왕개미를 선정한다. 대개 알을 가장 많이 낳고 튼튼한 여왕개미다. 나머지 여왕개미들은 모두 살해된다.

서울대 최재천 교수(생명과학부)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는 개미의 행동이 언뜻 보기에 잔인해 보이지만 집단의 발전을 위해 혈연과 지연을 무시하고 철저히 능력 위주로 지도자를 선택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선거가 내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좋은 지도자가 나와야 그 집단이 잘되기 마련이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수컷의 1 대 1 결투로 지도자를 정한다. 우두머리가 늙으면 젊은 수컷이 도전한다. 그러나 색다른 방식으로 지도자를 뽑는 동물들도 있다. 특히 사회생활이 복잡한 개미나 벌, 지능이 높은 침팬지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정치와 비슷한 모습도 보인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라는 말은 침팬지에도 해당된다. 침팬지는 복잡한 동맹과 배반을 하며 지도자를 쓰러뜨리고 새 지도자로 등극한다. 유명한 침팬지 연구가 프랑스 과학자 드 발이 10여년 넘게 ‘예로엔’ ‘루이트’ ‘니키’라는 세 마리의 수컷을 관찰한 사례다.

처음에는 늙은 예로엔이 우두머리였다. 이후 젊은 루이트가 예로엔을 누르고 우두머리가 됐다. 그러자 예로엔이 어린 니키와 협력해 루이트를 이겼다. 집단의 우두머리는 니키가 됐지만 예로엔은 뒤에서 암컷들과의 성적인 관계를 차지했다. 이후 성숙한 니키는 루이트와 예로엔이 싸우도록 유도해 권력을 유지하고 암컷도 독점했다. 적을 이용해 적을 제압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예로엔과 싸워 큰 부상을 한 니키 대신 루이트가 우두머리가 됐다. 드 발은 이 사례를 들며 “정치학의 뿌리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독재자가 될 만한 사람을 뽑는 ‘조개 투표’를 해 뽑힌 사람을 10년 동안 외국에 보냈다. 동물은 대개 독재 체제지만 고대 그리스처럼 독재를 원천 봉쇄하는 동물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어떤 불개미는 여러 여왕개미가 제국을 지배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이룬다. 일개미는 각각의 여왕개미들에게 일정한 양의 먹이만 줘서 하나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절한다. 또 유전적으로 아주 월등한 능력의 여왕개미가 태어나면 일개미들이 그 여왕개미를 죽여 버린다. 뛰어난 여왕개미가 다른 여왕개미들을 평정하고 단일지도체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때로는 집단의 평범한 구성원들이 우두머리를 몰아내기도 한다. 인도과학아카데미 생태과학센터 라가벤트라 가다카 소장은 1985년 말벌을 연구하며 이런 현상을 관찰했다.

여왕벌이 죽자 유력한 후계자로 파랑과 오렌지 벌이 떠올랐다(색깔은 과학자들이 구별하기 위해 묻힌 페인트 색이다). 파랑 벌이 여왕벌이 되자 오렌지 벌은 멀리 떠났다. 그러나 파랑 벌은 유능하지 못했고 다른 일벌들은 꿀을 따오지 않는 등 태업을 했다. 10여일 후 오렌지 벌이 돌아와 여왕벌이 됐고 일벌들은 다시 열심히 일했다.

물개는 수컷 우두머리가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다. 그러나 말, 사슴, 일부 새들은 우두머리가 패자들에 권력을 나눠 준다.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암컷과의 관계를 허용해 준다. 이런 집단에서는 우두머리가 얼마나 권력을 잘 나눠 주느냐에 따라 집단의 발전이 좌우된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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