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2]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03분


김택진 사장은 과학이 너무나 재미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혼자 숨겨놓고 즐기기에 아깝다고 말한다. - 사진 이만홍 작가
김택진 사장은 과학이 너무나 재미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혼자 숨겨놓고 즐기기에 아깝다고 말한다. - 사진 이만홍 작가
“과학은 공학적 성과나 물리 현상만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우주가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만큼 많은 해답을 주는 분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철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과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35)은 과학을 이야기할 때면 늘 철학, 역사와 연결시킨다. 그에게 있어 게임은 과학으로 신화와 철학, 역사를 인터넷 공간에 구현한 것이기 때문. 그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중세 유럽을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찾는 판타지소설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1997년 설립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4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대만에서 리니지가 ‘천당(天堂)’이란 이름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과 가정용 게임기용 리니지 개발 협상을 벌이는 등 세계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26만원까지 올랐다.

덕분에 김 사장은 보유 주식으로 최근 ‘2002년 한국의 100대 부호’ 21위를 차지했다. 벤처기업가로는 최고 부자다.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상으로 김 사장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과학은 너무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저 혼자만 숨겨놓고 즐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를 권하는 것이지, 사회적 혜택이나 가능성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른 동년배들처럼 어린 시절 아톰 만화를 보며 로봇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라디오 조립에 열중한 것도 그 때문. 그러나 곧 땜질밖에는 배울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라디오의 원리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시 원리는 대학에서 배운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대학에 가는 것으로 꿈을 수정했다고 한다. 고교시절 의대, 법대 진학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물리와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 공대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청소년에게 “남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내면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9세, 7세 된 두 아들에게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설명하다가 자연스럽게 인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고 한다. 대화 끝에 놀랍게도 아이들은 “사람이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이를 낳아 왔구나”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진지하게 대해주면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느라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김 사장이 그토록 강조하는 독서까지 기피하게 된 현상은 어떻게 생각할까.

“게임을 통해 기술과 문화가 결합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임의 가치는 경험을 주는 것입니다. 10∼20년 뒤에는 게임이 교육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또 물건을 사고 팔면서 경제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형태의 게임도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역사와 철학도 좀 더 풍부하게 삽입할 계획입니다.” 이것이 그가 게임을 통해 사회에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공동기획 동아일보·한국과학문화재단·동아사이언스

■김택진 사장은…

67년 서울에서 출생. 대일고 졸업 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이찬진, 김형집 등과 ‘아래아한글’을 개발했다.

김 사장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천운(天運)’이지만 인간적 관계는 ‘별로’였다고 한다. 그보다는 꿈이 같았다는 게 더 중요했다는 것. 컴퓨터 타자 프로그램개발사인 ‘한메소프트’도 당시 설립했다.

91년에는 현대전자에 들어가 인터넷서비스인 아미넷 개발팀장을 맡았으며 97년 온라인 게임개발업체인 엔씨소프트를 설립했다.

2001년에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아시아의 스타 50인으로 꼽았고, 홍콩의 경제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도 변화를 주도한 인물 20인으로 선정했다.

최근엔 세계경제포럼 ‘아시아 차세대 리더’ 선정위로부터 아시아 과학기술선구자로 뽑히기도 했다. 잦은 출장에도 한 달에 책을 10권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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