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빙하기 바이칼에 한민족이 살았나

  • 입력 2002년 8월 27일 17시 44분


시베리아 최고의 성지인 바이칼호 내 올혼섬에서 바라본 호수와 불한 바위. 기후가 건조해 섬의 대부분이 초원이고 소를 방목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시베리아 최고의 성지인 바이칼호 내 올혼섬에서 바라본 호수와 불한 바위. 기후가 건조해 섬의 대부분이 초원이고 소를 방목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한민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해답을 한반도 내에서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북방 아시아인과 언어 문화 뿐 아니라 생김새와 유전적 특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국경은 물론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종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 첫 시도로 우리나라의 유전학자, 의사, 지질학자, 고고학자, 민속학자 22명과 러시아 학자 4명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이르쿠츠크대에서 ‘동아시아 민족의 뿌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시베리아의 성소로 추앙되는 바이칼호를 답사했다. 동아사이언스는 서울대 내분비대사영양연구소,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이르쿠츠크대가 공동 주최하고 (주)미토콘과 (주)SIS가 후원한 이 행사를 단독 동행 취재해 보도한다.》

해외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거리에서 한국인을 한눈에 쉽게 알아보고 아는 척 한다. 그러나 비행기로 4시간 거리나 떨어진 바이칼호에서 맞부딪친 시베리아 원주민이 한국인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얼굴이 똑같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 아시아인은 다리가 짧고, 두터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다. 또 얼굴이 평평하며 코가 낮고, 입술이 작고, 눈꺼풀이 두텁고, 눈이 가늘다. 이런 생김새는 동상과 찬바람을 견디고, 흰 눈 속에서 지내는데 보호막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의대 이홍규 교수는 이런 북 아시아인의 체질이 빙기 때 시베리아에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를 조직한 이 교수는 20년 전 북방과 남방 아시아인의 당뇨병 유전자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 뒤부터 한민족의 기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추위에 적응된 체질이 형성되려면, 오랜 기간 고립된 지역에서 살았어야 한다”며 “2만5000년 전쯤 시베리아에 매우 혹독한 빙기가 닥쳤을 때 바이칼호는 아시아인들의 선조에게 오아시스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당뇨병 전문가인 이 교수로서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한 문제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 이제는 추위를 모르고, 영양도 과잉 상태다. 이런 급속한 환경 변화와 체질의 부조화가 비만과 당뇨를 일으키는 것. 이 교수는 “실제로 시베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와 유전적으로 비슷한 미국의 피마 인디언은 거의 모든 성인이 비만 상태이고, 절반은 당뇨병에 걸린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를 포함한 전세계 유전학자들은 80년대 말 세계 주요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등장한 ‘아프리카 인류 기원설’을 신봉한다. 흔히 ‘분자 시계’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엄마가 딸에게만 물려주고 돌연변이가 빨라 조상을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 학설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15만년 전 쯤. 이어 5∼7만년전 쯤 중동지역으로 진출해 빠른 속도로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로 퍼졌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 국내 유전학자들은 한국인의 원류가 된 북 아시아인이 마지막 빙기인 5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 시베리아 지역에서 살면서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북 아시아인의 체질을 갖고 있지만, 남방계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유전자 등도 일부가 섞여 크게 4개의 유전학적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며 “이는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을 4종류로 구분한 것과도 일맥상통해 유전자 검사를 통한 사상체질의 진단법을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국대 김욱 교수(유전학)도 북 아시아인이 한민족의 주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남방계 혈통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본다.

김 교수는 한국, 일본, 몽골, 중국, 태국 등 아시아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1만6500개의 DNA 가운데 CCCCCTCTA라는 9개의 글자가 빠진 특이 유전자를 가진 비율이 한국인은 16%, 일본인 14%, 중국인 13%였다. 반면 몽골인은 4%, 베트남인은 23%, 필리핀인은 30%여서 북쪽으로 갈수록 낮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았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통해 한민족의 형성과정에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무덤 계곡’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석기를 연구한 목포대 이헌종 교수(고고학)는 “2만5000년 전부터 날씨가 추워지면서 정교한 세형돌날 문화가 시베리아에서 발원해 한반도로 확산된 것은 빙기와 인구 이동의 연관성을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고고학의 권위자인 이르쿠츠크대 게르만 메드베데프 교수는 “빙기였던 1만7000년∼1만9000년 전 바이칼호 인근의 시베리아가 사막화되자 더 좋은 기후를 찾아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인구가 밀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홍규 교수는 “국내 구석기 유적에서 나온 뼈에서 DNA를 추출해 시베리아 원주민이나 인골의 DNA와 비교하면 한민족의 이동경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우리 특유의 질병 패턴을 찾는 연구에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칼호 독특한 생태계▼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최대 수심 1642m인 이 호수에는 전세계 민물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초승달처럼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바이칼호는 길이 640km, 평균 너비는 48km로,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 여기까지 물밑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주변의 숲과 초원에서 365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 북극해와 연결된 앙가라강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주용 박사는 “바이칼호는 3000만년 전부터 호수 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면서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지질학자 구엔나디 우핌체프 박사는 “지금도 호수 주변은 1년에 1㎝씩 융기하고 호수는 매년 2㎝씩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칼호에는 2500종의 동식물이 산다.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호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 어종이 이곳의 명물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이 생성된 지 오래된 호수이고, 일반적인 호수와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90년 미소 합동조사단은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맑은 물, 높은 생물 다양성, 많은 온천은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아시아인에게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

브리야트족의 샤먼 발렌틴.
▼바이칼호 주변 부리야트족▼

시베리아에는 여러 아시아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 40만의 부리야트족은 이 중 최대의 소수 민족으로, 바이칼호 주변에서 자치공화국을 이뤄 살고 있다. 특히 부리야트족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속과 비슷한 점이 많아 관심거리이다.

원래 바이칼의 주인인 이들은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동화돼 부리야트족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남쪽 국경 너머 몽골과 중국 북부의 몽골인과 뿌리가 같고 언어도 비슷하다. 유목민인 이들은 모두 자신을 징기스칸의 후예로 믿고 있다.

부리야트족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똑같은 민족 설화를 갖고 있다. 한 노총각이 바이칼호에 내려온 선녀에 반해 옷을 숨겼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아들 열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방심하는 틈에 선녀는 숨겨놓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얘기이다.

답사단은 이르쿠츠크시를 떠나 시베리아 최고의 성지인 바이칼호의 올혼섬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10시간 동안 달리면서 우리는 길가에서 오색 천조각을 두른 나무말뚝을 수없이 만났다. 배재대 이길주 교수(러시아학)는 “샤머니즘의 상징인 이 말뚝은 오리를 조각해 나무 꼭대기에 꽂아놓은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과 상징적 의미와 형상이 거의 똑같다”며 “이는 한국의 토속신앙과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이르쿠츠크에서 여행사를 하는 정정길씨는 “부리야트족도 우리처럼 천한 이름을 지어줘야 오래 산다고 믿어 ‘개’란 뜻의 ‘사바까’란 이름이 흔하다”고 귀띔한다. 아기를 낳으면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전통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

마침내 석양이 바이칼을 온통 붉게 물들일 무렵 우리는 올혼섬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서 부리야트족의 샤먼 발렌틴을 만났다. 그는 검푸른 호숫가의 신목(神木) 아래서 바이칼의 신 불한(칸)을 부르는 굿판을 벌였다.

바이칼을 찾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부르는 샤먼의 북소리와 애잔한 노래 가락은 우리 정서와 금세 공명을 일으킨다. 함께 따라서 추는 춤은 강강술래 같다. 예전의 샤먼이 썼던 모자는 사슴뿔 모양으로, 신라의 왕관과 모습이 닮아 시베리아의 샤먼 전통이 한반도로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차례 바이칼을 답사한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장은 “스탈린 시대 때 많은 브리야트족 샤먼이 처형당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바이칼호에는 다시 샤머니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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