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 한달]결속 갈수록 더 강화…정부와 대치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37분


K병원 레지던트 4년차 한모씨(31). 내년 1월 전문의 시험이 있지만 ‘포기’를 무릅쓰고 파업 중이다. “한번 의료제도가 정착되면 20∼30년은 뜯어고치기가 힘듭니다. 잘못된 의료환경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1만6000여명의 전공의 파업이 한달째를 맞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를 둘러싼 의료계의 투쟁을 사실상 이끌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선명하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공의가 처음부터 이처럼 강고한 대오를 유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쟁을 거치며 더욱 결속됐다. 전공의 ‘응급의료진료단’ 한충민씨는 “그동안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면서 의료환경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면서 “이번 파업을 계기로 전공의 대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직업윤리를 펼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파업은 당장 종합병원의 업무 마비를 초래했다. 2000여명의 전공의들이 응급실 무료진료단을 운영하긴 했지만 수술이 연기되는 등 환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빨리 협상에 나서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반면 연봉 1800만∼2000만원의 저임금을 받는 전공의 위주의 종합병원 운영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부각되는 계기도 됐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전공의 사이에는 개인적인 불이익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파업이 쉽사리 수그러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서울중앙병원 일반외과 레지던트 3년차 홍성희(洪性嬉·28)씨는 “수련 과정에서 한달 이상 빠지는 것은 큰 손실이고 1년 다시 수련을 더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여기서 파업을 접을 수 없으며 이번 기회에 의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전공의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일각에서는 내년 전문의 시험을 거부하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으며 일부는 직종을 바꾸거나 유학을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공의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자 국공립병원 전공의 임금을 15% 인상하는 내용의 처우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또 지난 주말에는 최선정(崔善政)보건복지부장관, 청와대 관계자 등이 전공의 대표들과 직접 만나는 등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다. 전공의들은 “구속자 석방 등 전제조건을 내건 것은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신뢰를 보여달라는 의미”라며 정부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공식 석상에서 만나 모두 논의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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