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대신 과학잡은 TV '고스트버스터'

  • 입력 2000년 8월 23일 19시 13분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러 서늘해진다. 그래서 유독 여름이면 TV와 영화관에 공포물이 많이 등장한다. 지난 98년 방송위원회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하고 충격과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TV 귀신프로그램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지난달 약속이나 한 듯 귀신과 심령을 부활시켰다. 더욱 문제는 이 프로그램들이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서 마치 귀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처럼 결론을 유도하고 있는 점이다.

MBC의 ‘TV 특종, 놀라운 세상’은 연예인들의 전생 이야기로 시청률 잡기에 나서더니 급기야 지난 7월 29일에는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며 첨단 과학 기기까지 동원했다.

또 SBS의 ‘뷰티풀 라이프’에서는 뉴스 보도를 맡았던 앵커가 심령을 추적하러 다니고 있다.

‘TV 특종’은 무속인에게 귀신을 불러내게 하고, 초음파 측정기와 적외선 카메라로 귀신을 부르기 전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람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 영역인 40㎑ 대역에서 변화가 감지됐고, 적외선 카메라에는 출연한 연예인들에게서 미세한 체온 변화가 측정됐다.

귀신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귀신의 존재가 증명된 것일까.

초음파는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인 20㎐∼20㎑ 이상의 음파이다. 하지만 돌고래나 박쥐는 이 초음파를 감지할 수 있어 이것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먹이를 식별한다. 반대로 청고래나 코끼리는 초저주파를 이용하기도 한다.

초음파나 초저주파는 사람에겐 낯설지만 자연계에선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초음파가 귀신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또 출연한 연예인들에게 체온 변화가 감지됐지만, 적외선 카메라 촬영에 참가한 업체의 관계자는 “이 변화를 귀신에 의한 것으로 바로 연결시키기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방송에 나온 무속인은 귀신이 지나갔기 때문에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것도 근거 없는 주장이다.

삼성의료원 신경과의 김병준 박사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무서움을 느끼면 자율신경계인 교감신경이 흥분되면서 땀을 흘린다”며 “이때 흘린 땀은 양이 적어 피부로 나오자마자 금새 증발해 결과적으로 몸의 열을 빼앗는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는 프로그램 제작진의 양심이다. 실험 기기를 제공한 회사의 관계자는 이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한 회사인 “CAA의 프로그램 제작진이 적외선 카메라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귀신을 찾으려고 이런 장비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촬영할 수 없다”고 했으나 이런 주장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TV 특종’은 귀신의 존재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고 판단을 시청자에게 맡기는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본 많은 시청자들에게 귀신이 정말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SBS의 ‘뷰티플 라이프’도 ‘심령의 실체’란 코너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백지연씨가 지난달부터 무속인과 함께 귀신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찾아다니며 경험담을 듣고 있다. 무속인들은 “두 명의 귀신이 있다” “귀신이 가슴을 누르고 있다” “귀신을 쫓아냈다”는 등 증명할 수 없는 말들을 해댄다.

백지연씨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뉴스 앵커로 기억돼 있어, 백씨가 무속인의 말을 경청하는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귀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만화는 많이 있었다. 시청자들도 이 프로그램을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즐겼다. 하지만 ‘TV 특종’이나 ‘뷰티플 라이프’는 사실을 전달하는 보도성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귀신이 등장하면 시청자들은 귀신이나 심령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젖게 된다.

한 때 최불암 관찰일기 시리즈가 유행했다. 벼룩의 다리를 떼어 내고 “뛰어”라고 명령했을 때 뛰지 못하는 것을 두고 명령을 듣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 ‘다리를 떼면 벼룩은 귀가 먹는다’고 기록했다는 이야기다.

TV 방송의 귀신 추적이 이러한 우스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왜일까.

<이영완 과학동아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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