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학회 학술회의]"디지털시대 캐릭터는 살아있다"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40분


오리를 닮은 닭이 스컹크를 닮은 너구리를 만나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 애니메이션이 진행되는 화면 밖에서는 사람이 닭의 인형을 들고 여러 가지로 닭의 행동을 보여준다. 화면 안의 캐릭터인 닭은 화면 밖 닭인형의 움직임을 따라 익히며 행동하고 너구리는 이에 반응하며 돌발 상황에 적응해 나간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꿔가는 시대에 디지털이 우리 문화의 곳곳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현상을 점검하고 전망을 시도하기 위해 마련된 한국영상문화학회(회장 도정일 성완경)의 학술회의장. 사람들은 첫 발표자가 소개하는 이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열심히 보고 있다. 17일 ‘우리 시대의 디지털 풍경과 영상 문화의 전통’을 주제로 열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철학 문학 언어학 언론정보학 의상학 전자공학 건축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비롯해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관심이 높은 청중들이다.

학술회의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사람은 SBS드라마 ‘카이스트’ 중 해성(이나영 분)의 실제 모델인 윤송이박사. 최근 미국 MIT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매킨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발표문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캐릭터 패러다임’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캐릭터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캐릭터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현재 그가 공부하던 세계적 권위의 MIT 미디어랩에서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실현되고 있다고 한다. 이날 보여 준 비디오도 MIT 미디어랩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이는 이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김주환교수가 ‘디지털 미디어가 제기하는 존재론적 문제들’이란 발표문을 통해 “사물의 디지털화와 정보의 사물화”를 예견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디지털 존재가 점차 물적 특성을 지니게 되고 또 한편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물들이 디지털 정보로 통제되는 지적 존재가 돼 간다”는 것이다.

윤박사는 이 캐릭터의 방식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태어나기 전엔 예상치 못했던 불확실한 환경에서 다양한 수준으로 주어지는 많은 양의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대응하며 생존해 가는 능력은 동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자연계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동물들이라면 이미 갖추고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 패러다임은 이런 동물행동학에 기반해 지능을 갖춘 객체를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그에 따르면 지능을 가진 객체는 지각 감성 행동 액션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간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논리적 이성’이 아닌 ‘감성’이 전체를 총괄한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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