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 '인터넷게시판 공포'…강의불만 마구게재

  • 입력 1999년 10월 7일 19시 33분


이번 학기초 S여대의 김모교수(52)는 이 대학 홈페이지에 한 학생이 올린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학생은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학교에 왔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교수가 오지 않았다. 교수님의 무책임한 행동에 실망했다”라고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

다소 무례한 내용에 당황했지만 게시판에는 익명으로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누가 썼는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최근 각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마다 설치된 게시판에 교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글이 자주 올라오면서 전전긍긍하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이 게시판은 학사행정과 학내 사안에 관한 학생들의 건의와 비판을 익명으로 올릴 수 있도록 마련된 ‘열린 공간’.

하지만 강의시간 등에 사소한 불만이라도 있으면 바로 게시판에 올리는 ‘N세대 학생들’의 행태 때문에 교수들이 ‘게시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 대학의 또다른 교수 역시 지난 학기에 편의상 정치인들을 예로 들어 강의를 한 뒤 이튿날 한 학생으로부터 “왜 특정정치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느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그 뒤 그는 아침에 출근해 혹시 자기강의에 대한 지적이 올라와 있는지 게시판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가 됐으며 다른 교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학생들의 지적대상은 학사행정에서부터 교수들의 강의내용에 대한 불만과 매점 직원의 불친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건전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 교수들의 사생활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을 올려 교수들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K대에서는 “모교수가 제자와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 대학측이 뒤늦게 이를 삭제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여대에서는 이같은 부작용이 심해지자 교수들이 최근 “게시판을 실명제로 바꿔달라”며 학교측에 건의하기도 했다. 익명게시판의 부작용을 우려해 아예 처음부터 실명제로 게시판을 운영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게시판을 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며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을 무절제하게 남용하는 학생들에 대한 비판도 이에 못지않아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 같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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