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보화 평가 下]책임관조차 「컴맹」많아

  • 입력 1998년 11월 6일 19시 30분


‘정부 정보화 이것만은 고치자.’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취재기자들이 각 부처를 방문조사한 경험을 토대로 정부 정보화의 제약요인과 과제를 짚어본다.

▼형식적인 CIO제도〓정부가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9월부터 각 부처에 도입한 정보화책임관(CIO)제도가 형식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당초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대비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보화를 행정개혁과 긴밀히 연계, 추진하기 위해 CIO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부분 부처에서 CIO를 겸임하고 있는 기획관리실장은 워낙 업무가 바빠 정보화사업에 매달릴 여유가 거의 없었다. 각 부처가 전문성이나 정보화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부처업무를 종합 관리하는 기획관리실장을 CIO로 임명한 것도 문제.

장관을 도와 정보화를 책임지고 꾸려가야할 CIO가 부내 정보화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컴맹인 경우가 많았다.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 CIO협의회 의장으로서 행정부내 정보화사업을 통괄 조정하도록 돼있으나 지금까지 회의가 한번도 열리지 않는 등 유명무실하다. 청와대에도 부처간 갈등을 조정하고 정부 전체의 정보화를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없어 현재의 형식적인 CIO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절실한 실정.

▼주도권 싸움에 날샌다〓정보화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는 서로 ‘정부 정보화는 우리가 주도한다’고 내세운다.

행자부는 ‘사람’(조직 및 인사권)을 쥐고 있고 정통부는 ‘돈’(정보화촉진기금)을 미끼로 다른 부처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두 부처의 힘겨루기 때문에 정부 전체의 효율적인 정보화는 번번이 뒷전으로 밀린다.

전자결재시스템만 하더라도 행자부가 ‘국정보고시스템’을 개발, 각 부처에 무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정통부 외교통상부 등은 이미 독자 시스템이 있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 국정보고시스템은 아래아한글을 사용할 수 없는 등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상반기에 실시하기로 했던 부처간 문서유통이나 전자문서의 표준화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전자정부 구현방법에 대해서도 한치의 양보도 없다. 행자부가 올해초 ‘전자정부의 비전과 전략’에 대해 발표하자 정통부는 이 프로젝트에 예산지원을 거부했다. 국회에서 추진중인 전자정부 관련 입법에 대해서도 정통부는 “기존 정보화촉진법으로 충분하다”며, 행자부는 “취지는 좋은데 시기상조”라며 각각 반대하고 있다.

주도권 다툼은 정통부와 행자부만이 아니다. 전자상거래를 놓고서는 산업자원부와 정통부, 콘텐츠산업의 육성에 대해서는 정통부와 문화관광부가 ‘서로 우리 영역’이라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해못할 ‘E메일 차별’〓현재 대부분 부처는 과장급 이상만 정부가 발급한 E메일 ID를 갖고 있다. 이는 행자부가 정부고속망을 이용한 전자우편시스템을 개발한후 올해 6월 E메일 ID를 발급하면서 대상 공무원을 과장급 이상으로 제한했기 때문.

행자부 관계자는 “E메일 서버용량에 한계가 있는데다 안기부가 ‘주요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 일단 과장급 이상에만 E메일 ID를 발급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ID가 없는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E메일은 물론 인터넷도 활용할 수 없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결국 개인적으로 PC통신에 가입해 E메일을 사용하거나 과장의 E메일 ID를 직원들이 공용으로 쓰고 있는 형편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누가 E메일을 이용해 행정정보를 외부로 유출하겠느냐”며 “외국인과 E메일을 주고받을 때 개인ID가 없다는 말을 창피해서 차마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깔린 종합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정부가 발급한 E메일 ID조차 없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정보화 시대의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정보화 허례허식 많다〓장차관실 실국장실 등 고위 공무원들의 방에는 펜티엄급 최신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반면 386, 486 등 낡은 기종은 하위직 공무원들 몫이다. 하지만 최신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고위 간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관들 중 상당수는 취임 이래 컴퓨터를 한번도 켜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비싼 정보화 기기가 방치되고 있는 셈.

정부 세종로청사와 과천청사 안내실에는 각각 ‘열린 마당 열린 정부’란 이름의 터치스크린방식 안내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안내시스템의 정보가 빈약한데다 제대로 작동조차 되지 않는다고 불평. 인터넷은 아예 연결되지도 않아 안내시스템의 설치이유를 모르겠다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최성진·임규진기자〉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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