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태씨 자살/정신과醫분석]자존심 훼손이 좌절감으로

  • 입력 1997년 4월 29일 19시 52분


전 제일은행상무 朴錫台(박석태)씨는 왜 자살이란 막다른 길을 택했을까.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박씨가 청문회를 통해 자신이 지켜온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 박씨를 죽음으로 이끈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양대 의대 신경정신과 金光一(김광일)교수는 『박씨같은 원칙주의자는 스스로 만든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런 사람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양심적일뿐만 아니라 주위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생각 또한 강하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박씨가 청문회 직전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 한 것은 한보에 대한 대출을 거절하고 싶었으나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출해줌으로써 원칙을 저버린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려대 의대 정신과학과 徐光潤(서광윤)교수도 『31년간 은행에 몸담아온 박씨는 한보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외길인생이 막히자 엄청난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고 여기에 청문회는 또다른 스트레스로 박씨를 압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청문회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한 것은 어떤 비리를 저지른 것을 인정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증언으로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때문이고 이로 인한 강박관념이 자살을 택하게 만들었다는 것.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모든 증인을 범죄인처럼 대하는 우리 청문회의 굴절된 행태도 박씨를 죽음으로 내몬 또다른 이유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李萬弘(이만홍)교수는 『박씨가 청문회라는 공식석상에서 여러사람들에게 마치 피고인처럼 추궁당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겨온 자존심을 짓밟히게 돼 심한 모멸감을 받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현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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