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메달보다 값진 땀과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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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좋다’ vs ‘열심히 한다’… 노력을 칭찬할 때 더 효과적
전설적 농구감독 존 우든, 10차례 우승신화 비결도 성과보다 과정의 중시
평창올림픽, 메달을 잣대로 비주류의 소외와 차별 없어야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똑똑하다 vs 열심히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 칭찬일까. 미국 교육심리학자 캐럴 드웩 교수 팀의 초등학생 대상 연구에 따르면, 후자 쪽이다. 성과나 능력보다 성품과 노력을 언급할 때 칭찬의 효과가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을 칭찬받은 아이는 계속해서 머리 좋다는 얘기를 듣고픈 욕심에 힘든 과제를 마다했다. 반면 ‘노력파’로 평가받은 아이는 실수를 ‘쿨’하게 생각해 어려운 과제도 덥석 맡았다. 시험 점수보다 준비 과정과 노력에 주안점을 두는 칭찬이 자녀의 성장에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저서 ‘소셜애니멀’에서 인용한 ‘결과보다 과정’의 원리다.

냉혹한 승부가 지배하는 스포츠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불멸의 신화를 남긴 대표적 사례가 있다. 미 스포츠매체 ESPN이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한 존 우든. 그가 이끈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농구팀은 1964∼1975년 88연승, 그리고 전미대학농구대회 10차례 우승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뜻밖에도 우승 비결은 승부에 집착 말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라는 교과서적 가르침. 그는 ‘승리’란 말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선수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 설사 이겨도 ‘실패한 경기’로 평가했다. 최선을 다하고 패한 것은 수긍하지만, 상대팀에 이겼을지 몰라도 자신에게 진 경기에는 엄격한 반성을 요구한 것. 그의 눈에는 능력자와 노력자의 격차도 보이지 않았을까. 스타 선수와 벤치멤버를 평등하게 대우했다. 능력보다 노력에 방점을 찍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우든 감독이라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여러 논란을 어떻게 보았을까. 88서울올림픽 후 30년 만의 올림픽, 그 시간만큼 우리는 성숙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메달 중심, 성적 지상주의는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행태가 세월 가도 그대로이듯.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와 관련해 ‘메달권 밖’이라느니 ‘단일팀이 아니라면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둥의 국무총리 발언은 이 모든 정황이 간결하게 압축된 표현이다. 모든 잣대는 메달로 귀결된다는 생각의 프레임이 자연스레 표출된 결과이리라. 사업의 판단 기준은 돈벌이, 정치의 잣대는 득표에 귀결되는 것처럼.

이 같은 결과 중심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대해 2030세대의 반발은 거셌고 총리는 공개 사과를 했다. 이런 해프닝을 겪었다고 해서 경기 내용보다 경기 후 메달에 집착하는 견고한 집단사고가 단번에 바뀐다는 보장은 없을 터다. 이런 사회적 토양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과’에 연연하느라 의견수렴 같은 ‘준비 과정’을 건너뛰는 고질적 적폐는 정권이 바뀌어도 자꾸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과정을 무시해도 결과만 좋으면 결국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메달로 선수의 서열과 가치 전부를 매길 수는 없다. 대중의 관심이 있고 없고가 경기 종목의 우열을 나타내지도 않듯이. 국가대표의 광채가 빛나는 올림픽이라면 더 그렇다. 태극마크 선수들이 평창에 오기까지 쏟은 땀과 눈물은 메달권이든 아니든 똑같이 짜다. 무관(無冠)의 선수들, 비주류의 노력에도 합당한 평가와 갈채를 보내야 마땅하다.

노메달은 실패나 낙오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입시 낙방이나 선거 낙선을 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주최국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일이다. 어제는 메달권과 거리가 먼 루지 대표팀 소식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썰매의 한 종목인 루지팀은 독일에서 귀화한 여자선수를 포함해 모두 5명. 그중 3명이 뼈 골절에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의 기량을 펼치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쳤다. 이들의 투혼은 그 어느 메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값지다.

최강 한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리 내부의 메달집착증이 평창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메달과 인기라는 당장 눈앞의 계산법을 잣대로 차별과 소외를 작동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이번 올림픽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선수 모두에게 경의를 보낸, 그리고 과정을 주목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정착된 대회로 기억되길 기대해본다.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스포츠를 통해 국민과 정치권에 이런 공감이 확산될 수 있다면 다행이겠고. 이것이 곧 올림픽 정신인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열망해온 민주주의의 핵심 정신이 아니던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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