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8>사과나무의 상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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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문이 있듯이 책에도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그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에는 표지가 문이다. 출판사가 그 문에 공을 들이는 것은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책 속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표지가 있다.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몸통도 초록색이고 잎도 초록색이다. 잘 익은 사과 하나가 떨어지고 있다. 나무처럼 초록색인 셔츠에 사과처럼 빨간색인 멜빵 반바지를 입은 아이가 그 사과를 받으려 손을 내밀고 있다. 나뭇잎과 가지의 형상으로 보아 사과는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아이에게 살포시 던져주는 것만 같다. 나무의 몸통에는 흰 글씨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쓰여 있다.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1964년에 펴내고 지금까지도 자주 읽히는 동화의 표지다.

표지에 끌려 안으로 들어가면 소년에 대한 나무의 사랑과 희생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옛날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년을 사랑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그리고 나무는 행복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스토리는 나무가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모습들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나무는 소년이 어렸을 때는 사과와 그늘을 내어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지와 몸통을 내어주고, 노인이 되었을 때는 그루터기까지 내어준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소년과 나무의 관계에서 소년만이 중요한 것일까. 자신을 내어주는 과정에서 나무가 받는 상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지가 잘리고 몸통이 잘리는 나무의 아픔은 어찌 해야 하는가. 나무를 나무가 아니라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누군가에 대한 은유로 받아들이면, 이것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스토리는 나무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있음에도(‘그녀는 소년을 사랑했다’) 나무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밝고 행복한 표지도 그 침묵에 공모한다. 이것이 표지를 신뢰하면서 동시에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표지는 진실의 절반만을 대변하고, 나머지 절반은 스토리의 침묵에 있다. 나무도 아프다는 것. 우리를 사랑해 주는, 나무로 표상되는 타자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한숨을 쉬는 우리를 위로해 주는 그(녀)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에서야 깨닫고 가슴을 치는 늙은 소년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스토리의 침묵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밑에서 사과를 기다리는, 표지 속의 소년을 조금씩 닮았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스토리의 침묵#아낌없이 주는 나무#사과나무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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