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꿈 잃은 취준생에게 응원과 위로의 추석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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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고리오 영감(오노레 드 발자크·열린책들·2008년) 》
 
소설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시골에서 프랑스 파리로 갓 상경한 22세 법학도. 한 달 45프랑(약 20만 원)의 하숙비를 내고 다락 아래 단칸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고향에서 누이와 어머니가 근근이 보내주는 용돈이 아니면 살 길이 막막한 궁색한 처지다. 하지만 그에겐 형편없는 식사가 나오는 하숙집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런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법전이 아닌 파리의 사교계였다. 먼 친척의 인맥을 이용해 휘황한 사교계에 첫발을 들인 그는 하숙방과 공작 저택을 오가며 세상을 배워 간다. 100만 프랑의 상속녀와 결혼할 기회를 얻는가 하면 모든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기도 한다. 소설은 조력자와 함정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그의 모험을 숨 가쁘게 그려낸다.

라스티냐크는 발자크의 영향을 받은 후대 프랑스 작가들이 열성적으로 묘사한 ‘청년기’의 전형이기도 했다. 당대 대도시에는 출세를 위해 재치를 뽐내고 수완을 겨룬 수천, 수만의 라스티냐크들이 있었다. 그래서 파리는 시인 보들레르에게 ‘꿈으로 가득한 개미굴’이었고, 에밀 졸라에겐 ‘영원히 늙지 않는 도시’였다. ‘고리오 영감’은 파리를 향해 “이제 우리 둘의 대결”이라며 도전을 선언하는 라스티냐크의 말로 끝난다.

이 이야기가 현대인에게 마냥 가볍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19세기 야심가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21세기 청년들의 처지가 너무도 비슷해서다.

올해도 한국의 7급 지방공무원시험 경쟁률은 130 대 1에 달했다. 공기업들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채용규모를 ○○% 늘렸다’는 보도자료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 문턱을 넘는 데 20대를 모두 바치는 젊은이들에게 ‘꿈’이나 ‘야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치였을지 모른다.

청년들의 ‘특정 직업이나 직장 쏠림’ 현상과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번에 문제를 풀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니 이번 추석 명절에 꿈을 잃어 힘들어하는 취업준비생 동생이나 조카들에게 따듯한 응원과 위로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고리오 영감#오노레 드 발자크#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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