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덤핑 막아내야 일자리 지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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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을 말려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고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소비자는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을 구매한다. 그 제품이 덤핑 등 불공정 수입품인지 여부는 잘 따지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국내 기업은 덤핑 물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때로는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싼 원재료와 부품을 사용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등의 비용 절감을 꾀한다. 하지만 극복해 내긴 쉽지 않고 심지어 도산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외국 기업의 독과점 때문에 소비자는 선택권 상실과 가격 상승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처럼 소비자 후생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막스 하벨라르’라는 네덜란드 작가 물타툴리의 소설에 잘 나와 있다.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저지른 식민지 착취를 폭로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무조건 저렴하게만 생산하려는 기업들에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훗날 멕시코의 소규모 커피생산조합에서 최저보장가격에 커피를 구입하는 ‘막스 하벨라르 커피’가 등장했고, 이 커피의 상표는 공정무역의 영원한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자국 내 가격보다 싸게 수출하는 것을 뜻하는 덤핑은 상대국의 생산기반을 부당하게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국 내 노동가치 하락을 야기하는 명백한 불공정 행위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덤핑에 대한 규제는 용인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반덤핑협정, 보조금협정, 지식재산권보호협정 등을 통해 불공정 무역행위의 판단 기준과 절차, 조치 방법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덤핑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1987년 설립된 무역위원회가 맡고 있다. 무역위는 협정에 따라 지금까지 132건의 반덤핑·세이프가드, 115건의 지식재산권 보호조치를 시행하며 공정무역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수출 주도 성장전략을 내세우는 한국은 전 세계 52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세계 8위의 수출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기간산업의 글로벌 공급 과잉 문제와 무역적자 누적, 일자리 감소에 직면한 국가들의 보호무역 조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6년 세계 무역구제 조사 개시 건수는 340건으로 전년 대비 62건(22%)이나 증가했다.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은 대표적인 수입규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반덤핑 피소국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자발적 구조조정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면서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기업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무역위원회는 불공정 무역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산업피해를 구제하는 판정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무역위 사무국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반덤핑 조치로 구제받은 업체들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이 60%에 달한다. 무역구제 조치로 국내 기업들의 매출과 고용은 각각 18%, 7% 증가했다. 공자는 서른을 일컬어 ‘이립(而立)’,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어 흔들리지 않는 때라고 말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무역위원회는 중소기업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받들고 앞으로도 공정한 무역환경을 조성하는 ‘감시견(watchdog)’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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