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추어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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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미꾸라지는 미끄럽다. 다산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주는 글에서 ‘재물(財物)은 더욱 단단히 잡으려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재화야말로 미꾸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다산시문집’)

미꾸라지는 천하다. 영조 때 형조참의 벼슬을 했던 문신 유관현(1692∼1764)은 높은 관직에 있을 때 대단한 음식상을 받고,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고 했다(‘목민심서’). 조선시대 여러 기록에서도 미꾸라지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혼탁한 시대를 두고 “깊은 산 호랑이가 떠나면 여우가 활개를 치고, 깊은 연못의 용이 떠나면 미꾸라지가 판을 친다”고 했다. 여우와 미꾸라지가 날치는 시대는 천박하다.

미꾸라지를 먹던 이들은 가난한 서민, 하층민들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미꾸라지를 먹는 이들을 ‘세민(細民)’이라고 했다. 가난한 빈민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양과 돼지고기는 왕공이나 귀인이 먹고, 가난한 백성은 미꾸라지, 전복, 조개, 다시마 등을 먹는다’고 했다. 모두 11종류의 해산물을 기록했는데 그 첫머리에 미꾸라지가 등장한다. 10종류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이고 미꾸라지만 민물에서 잡는 것이었다.

미꾸라지는 추어(鰍魚), 추어(추魚) 혹은 이추(泥鰍)라고 불렀다. ‘이(泥)’는 진흙이다. 진흙에 사는 미꾸라지는 천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미꾸라지의 모습은 늘 천하다. 영조 즉위 원년(1724년) 12월의 정국은 어수선했다. 노론과 소론이 뒤섞여 싸웠다. 소론의 거두 이광좌가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시냇물을 흐리게 한다’라고 하였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승정원일기’). 이런 미꾸라지를 왕실이나 왕실의 제사에 사용했을 리는 없다.

고려 시대부터 우리는 꾸준히 미꾸라지를 먹었다. 다만 미꾸라지로 만든 공식적인 음식이 없었을 뿐이다. 19세기부터 미꾸라지는 음식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추어탕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밋구리탕과 추두부탕(鰍豆腐湯)이다. 밋구리탕은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에, 추두부탕은 오주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타난다.

미꾸라지탕을 퍽 상세하게 기록한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 내용이다.

‘진흙, 모래가 있는 곳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독에 넣는다. 하루 3회 물을 갈아주면서 5, 6일을 두면 진흙을 다 내뿜는다. 두부를 크게 잘라 솥에 넣고 미꾸라지 50∼60마리를 넣은 다음 불을 지핀다.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미꾸라지는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다 익은 다음, 두부를 썰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에 박혀 있다. 이것을 기름으로 지져서 솥에 넣고 메밀가루, 계란 부침개를 넣고 끓인다.’ 글의 끝부분에는 ‘그 맛이 매우 뛰어나고 이 탕을 도성의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는다’고 했다. ‘반인’은 성균관에서 일하던 노비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청소, 식사 준비 등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생활을 도우면서 조선 후기에 소의 도축과 쇠고기 유통도 맡았다. 비교적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계급은 하층민이었다. 미꾸라지는 하층민, 세민 등이 먹었던 식재료였다.

‘난호어목지’에는 미꾸라지, 밋구리를 설명하면서 ‘시골 사람들이 국을 끓여 먹는데 특이한 맛’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시골은 농촌이다. 밋구리탕은 미꾸라지 살을 곱게 만든 다음, 된장 푼 물에 넣고 끓이는 농촌지역 추어탕의 원형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에는 미꾸라지탕, 추탕이 정식 음식으로 등장한다. 소설가 김상용의 연재소설 ‘무하선생방랑기’에는 ‘동대문 밖 추탕’이 등장한다(동아일보 1934년 11월 16일). 지금도 남아 있는 서울의 추어탕 전문점들도 이 무렵 문을 열었다.

가정에서 추탕을 끓이는 법도 소개됐다. 한식연구가 조자호(1912∼1976)는 칼럼(동아일보 1938년 7월 22일)에서 ‘주부의 자랑이 되는 여름철 조선요리, 경제적이고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고 했다. 재료는 미꾸라지, 계란, 두부, 통고추, 파, 마늘, 생강, 표고버섯, 석이버섯, 깨소금, 간장, 참기름 등이다. 지금의 이른바 ‘서울식 추탕’ 재료와 흡사하다. ‘미꾸라지를 푹 곤다. 뼈를 추려낸 뒤, 살을 국물에 넣고 두부를 부쳐 채 썰어 사용한다. 여름철에 좋고 특히 허약한 사람들에게 좋을 듯하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여름철 보양식으로 추탕을 추천했음을 알 수 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추어탕#환식#다산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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