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대통령 전하,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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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대통령 메시지는… 늦고 소극적, 감동이 없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레임덕도 두려워 않고, 친박에 의존하지 않고,
국민에게는 무조건 지는… 정치의 원점으로 돌아가
그래서 부활을 예고하는… 그런 대통령은 이제 볼 수 없는가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4주 전 본란에 ‘대통령 전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총선을 보름 정도 앞뒀을 때다. 새누리당의 3류 공천을 보며 대통령이 여론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격려도 받았지만, 비판도 있었다. 대통령을 너무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새누리당이 과반은 차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당위적 차원에서 비판한 것인데 숫자를 들고 나오니, 순간 흔들렸다.

잠시나마 흔들렸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국민은 비판을 업으로 삼는 기자보다 철저하게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꾸짖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변화에 둔감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기자가 아니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대처 방식은 야당 시절이나 힘들었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전에는 쓸 카드가 별로 없는데도 신속 과감한 결단으로 반전의 감동을 안겨줬다. 그런데 지금은 더 잘 드는 칼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거의 여왕은 가고 권위적인 대통령만 남은 것 같다.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할 때 잘못될 경우를 상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 되면 권위가 손상되고, 레임덕이 빨리 온다며 소극적이다. 권위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고, 레임덕도 현관 문고리를 잡고 있다. 오히려 국민 앞에 철저하게 무릎을 꿇겠다는 ‘창조 정치’로 반전을 꾀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개혁의 골든타임을 안타까워하며 정치권을 질타했던 대통령이 왜 본인의 골든타임은 흘려보내고 있는가.

대통령이 계파 청산을 선언하라는 요구가 있다. 당 대표를 외부에서 영입하자는 주장도 한다. 그렇게 하든 말든, 친박 당선자가 훨씬 많은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다. 주군의 오류에 애써 눈감는 집단에 오류가 없으리라고 믿는 것, 그 자체가 오류다. 진박 마케팅으로 대통령에게 큰 누를 끼친 당선자들은 대통령 존영을 즉각 반납해야 마땅하다. 제1당도, 과반도 아닌 당에서 충성심만으로 뭉친 친박 그룹이 앞에서 설친다면 그런 당의 앞날은 훤하다. 별당 아씨를 보호하겠다는 마당쇠 마인드로는 떠나간 국민의 지지를 되돌릴 수 없다.

대통령이 정말로 야당과 협력할 뜻이 있다면 탈당도 방법이다. 초당적 차원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각오와, 대선 국면에서 중립적인 관리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증표로서 말이다.

내각과 청와대는 왜 그냥 두나. 여소야대 때문에 청문회를 걱정하는데,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의지는 보여야 반전의 기회라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요구를 하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대통령이 하려는 일이나 소신, 지향을 포기하라고 한 적이 없다. 방법을 바꿔 보라고 했을 뿐이다.

각료와 참모들에게 직을 걸고 직언하라는 요구는 안 하겠다. 경험칙상 지근거리 보좌진은 ‘세 가지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직언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대통령이 외부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데 대해 감동할 준비, 대통령이 세세한 국정 현안까지 꿰뚫고 있는 데 대해 놀랄 준비, 대통령과 본인의 소신이 부딪힐 경우 본인의 소신은 대통령의 그것에 비해 하찮은 것이기에 언제라도 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 각료나 참모들로부터 직언은 고사하고 ‘통촉하시옵소서’라는 말이라도 들으려면 대통령이 먼저 숨통을 틔워 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는 거꾸로다. 원래는 대통령이 국정 대책을 제시한 뒤 국민에게 지지해 달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민과 언론이 방법을 제시하고 그렇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거부한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 결과가 이번 총선이자, 30%대 지지율 붕괴다.

야권이 선제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말하고 있다. 예상 밖이다. 경제계 일각의 해석이 날카롭다. 야권이 내년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하긴 해야 하는데 욕먹을 일을 이번 정권에서 해치우자고 생각한 것 같단다. 새누리당의 굴욕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끝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할 의무도 있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있다. 이번에도 안 바꾸면, 마지막 기대마저 접을 사람이 많다. 바닥을 쳤으니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단해서도 안 된다.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대통령#국정운영#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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