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가족 위해 평생을 희생하다 쇠해진… 아! 어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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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하듯이 엄마를 업어 보니/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세 걸음 걷지 못해 ―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선(이시카와 타쿠보쿠·민음사·2014년) 》

일본 시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일본 문인들의 얼굴이 들어간 광고판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리고 여류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가 대표적인데, 이들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가 일본의 국민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다.

이시카와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아 온 것은 생활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쉬운 시어(詩語)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그의 시 중 ‘나를 사랑하는 노래’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몸이 쇠해 급기야 몸무게가 줄어든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표현했다. 어머니를 업은 시인은 예전에 비해 가벼워진 어머니의 몸무게를 느끼며 급기야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의 노쇠함은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한평생을 희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시카와는 서정성뿐 아니라 저항의식을 담은 시도 썼다. 시인이 살았던 메이지 시대는 부국강병이라는 기치 아래 서구식 근대화와 문명개화가 급격히 이뤄지던 시대다. 이와 함께 근대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정신도 싹텄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제국주의를 강요하며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억압했다. 이 시기 이런 국가의 모습에 실망한 대표적 지식인이 이시카와다. 그는 ‘끝없는 논쟁 후에’라는 시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러나 여전히 누구 하나 주먹을 굳게 쥐고 책상을 치며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며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비애를 드러냈다.

시인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 아사히신문사 등에서 교정 일을 하며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는 어머니가 1912년 3월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한 달 뒤 자신도 역시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당시 나이 26세. 비록 시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어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 속에서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고 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어머니#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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