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모바일과 종이, 담는 그릇 달라도 읽는 맛은 그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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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은 소설가 김연수 씨의 에세이다. 자신을 키워온 것들을 추억하는 이 산문은 표현이 뛰어나 독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자주 인용할 정도다. 출간된 지 12년, 종이책으로 35쇄를 찍은 이 스테디셀러 에세이가 최근 카카오페이지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순문학 에세이가 웹에서 판매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사실 순문학과 웹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판매 방식은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은 전체 32개 장(章)으로 구성됐는데 독자들은 1개 장씩 사볼 수도 있고 전체를 구매할 수도 있다. 원고지 20∼25장 분량인 1개 장의 가격은 300원. 하루 평균 10개 장이 판매되고 있는데 점차 구매자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조선마술사’의 원작인 김탁환 이원태 씨의 동명 소설도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웹 소설로 연재됐다. 당시 7만 뷰를 기록할 만큼 화제가 됐다.

주목할 점은 이 웹 작품들이 종이책을 바탕으로 하지만 종이책과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청춘의 문장들’은 종이책을 한 쪽씩 올린 게 아니다. 출판사는 이 작품을 모바일용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한 화면에 보이는 양이 종이책 한 쪽에 들어가는 양에 비해 확 줄었다. 또 읽다가 지루하지 않도록 한 화면마다 인용할 만한 구절이 적절히 배치되게 편집했다.

웹 소설 ‘조선마술사’는 종이책 버전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종이책에선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가 나오다가 조선의 마술사가 등장하지만 웹 소설은 곧바로 조선 마술사 얘기로 들어간다. 종이책은 전체적 완결성이 중시되지만, 웹 소설은 한 회 한 회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모바일 기기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독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이쯤 되면 관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대중성 기반의 웹과 문학의 순수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의 문제다. 출판사에서 종이책을 만들다 카카오페이지 도서사업팀으로 자리를 옮긴 이혜원 매니저는 “인간이 눈으로 네모난 화면을 보는 것은 종이책과 웹 모두 같다”면서 “판형이 바뀌어 편집이 달라졌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은 셈”이라고 말한다. 김탁환 씨도 “한국에서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바일 보고 있더라”며 모바일용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담는 그릇이 다를지라도 독자들이 즐기고자 하는 ‘맛’은 같다. 글자를 읽고 작품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행위는 종이든 웹이든 다르지 않다. 기존 웹에만 빠져 있던 사람들이 문학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청춘의 문장들’을 웹으로 접한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니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 “글쓴이의 사려 깊은 글쓰기가 사무친다. 가벼운 웹소설 웹툰에 길들여진 내 글 읽기가 사뭇 슬퍼진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청춘의 문장들#조선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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