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김정은이 中 뒤통수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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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작년 10월 북한과 중국 관계는 겉과 속이 달랐다. 10·10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 중국 지도부 권력서열 5위인 류윈산이 참석했다. 겉으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냉랭했던 북-중 관계의 회복을 과시했다. 중국의 압박 때문인지 북은 공언했던 인공위성도 장거리 발사체(은하 3호)도 선보이지 않았다.

‘중국 것’에 끌려다니지 말라

속으로는 불편함이 흘렀다. 북은 중국의 뒤통수를 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중국 대표단이 참석한 환영행사 때 중국 노래는 단 한 곡도 부르거나 연주하지 않았다. 류윈산은 조선말로 된 김정은 찬양곡만 듣고 돌아갔다. 당시 중국 대표단은 북한 지도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김정은은 그때 “중국 것들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당과 군의 고위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작년 12월 중순경 정보당국의 고위 인사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듣고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12일 모란봉악단이 공연을 취소하고 북에 돌아간 직후였다.

북이 공개한 4차 핵실험의 경과를 따져보니 의문이 풀렸다. 김정은은 작년 12월 10일 “수소탄의 거대한 폭풍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수소탄 핵실험의 운을 뗐다. 중국은 이때 불길한 조짐을 읽었고, 그 여파로 모란봉악단은 철수했다. 김정은은 닷새 뒤인 15일 핵실험 명령서에 서명했다.

김정은이 ‘수소탄 실험’을 결심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작년 9월 말 북 유조선이 원유를 싣고 귀항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에 원유 도입의 90%를 의존하는 북이 보인 예사롭지 않은 신호였다. 김정은의 ‘대중(對中) 고자세’ 지시가 이어졌다. 북은 중국의 비핵화 타령에 귀를 닫을 것이다. 중국도 북을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갈 생각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시 승부사다. 김정은이 귀빠진 날 ‘철부지 독재자’를 비난하는 전방의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내각과 청와대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소극적인데도 ‘응징의 원칙’을 밀어붙였다. 수소탄 핵실험과 대북확성기의 비대칭성은 대한민국이 당장 꺼낼 옵션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다. 2010년 연평도 사태는 휴전 이후 북한군이 민간지역에 포격을 가해 사상자가 난 초유의 상황이었다. 단호한 응징에 민간인 출신 장관들보다 군 관계자들이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MB) 정부는 북의 도발에 우왕좌왕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외교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MB 정부에 전략가가 있었다면 ‘평양을 치겠다’고 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만류하면 ‘밀당’을 하다 ‘미사일 사거리 협정’을 유리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못 이기는 체 물러설 찬스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위기의 박근혜 정부는 창발적인 전략으로 중국이 우리 편에 서는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정신차려야

김정은은 작년 6월 11일 정찰총국을 방문해 “자폭정신을 각오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요인 암살과 테러를 전담하는 특수공작과도 5국에 신설했다. 북은 2, 3차 핵실험 한두 달 뒤 엔 대대적인 사이버테러도 감행했다.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을 공격당한 북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테러 방지 관련법을 외면하는 정치권은 ‘앞통수’를 정통으로 맞아봐야 알 텐가.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김정은#북한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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