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사 명장면]<1>노태우정부 ‘북방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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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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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韓-蘇 정상 ‘샌프란시스코 회담’ 분단국 외교족쇄 풀다

《 광복 70년, 분단 70년. 한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한국은 유엔 수장을 배출한 나라가 됐지만 광복 당시에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조차 미미했다. 70년간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했지만 냉전과 남북 대치,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교적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런 노력을 통해 6·25전쟁, 냉전과 탈냉전을 견뎌내고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 외교의 고군분투 과정을 ‘광복 70년, 한국 외교사 명장면’으로 소개한다. 》

“연내 모스크바 구경 좀 하게 해 주소.”

1990년 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주모스크바 영사사무처장으로 부임할 공로명 외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고서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소련과 공식 수교를 맺자는 뜻이었다. 10개월이 지난 뒤 노 전 대통령은 실제 모스크바 땅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취임사에서 “우리와 교류가 없던 저 대륙국가에도 국제협력의 통로를 넓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방외교의 신호탄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은 한-소, 한중 수교로 외교 영토를 넓혀야만 했다.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가 없던 한국은 물밑에서 박철언 전 의원(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 등 비선(秘線)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1989년 2월 헝가리, 그해 11월 폴란드와 공식 수교한다. 북방외교의 절정은 공산권 종주국인 소련과의 수교였다.

“북쪽(중국·소련)으로 우회해 평양으로 가겠다”는 대통령의 북방외교 의지가 확고한 만큼 청와대를 중심으로 소련과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정부, 국회의 경쟁이 벌어졌다. 1990년 3월 20∼27일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 제1장관이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불화설이 불거진 것처럼 외교채널에 혼선도 빚어졌다. YS는 “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진 줄 몰랐다”고 했고, 박 전 의원은 “고르바초프를 만날 줄 몰랐다”고 서로 딴소리를 했다. 결국 박 전 의원은 청와대를 떠났고 대통령외교안보수석실이 북방외교의 전면에 나섰다.

○ 소련이 먼저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제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김종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1990년 4월 23일 세계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아나톨리 도브리닌 주미 소련대사로부터 깜짝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극비리에 만난 도브리닌 대사는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수석과 도브리닌 대사는 청와대, 크렘린궁과 각각 통화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했다.

그해 6월 한-소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이 한꺼번에 열린 것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비밀리에 진행된 한-헝가리 수교, 7·7선언 등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커진 상태였다. 김 전 수석은 “미국에서 한-소 정상회담만 하면 서로 불편하다”며 한-소 정상회담 직후 한미 정상회담(6일)을 제안했다. 미국이 이에 응하면서 노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까지 이뤄졌다. “한-소 수교는 부시 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었다”는 도널드 그레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증언처럼 미국은 측면에서 한-소 수교를 지원했다.

1990년 6월 4일(현지 시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는 사진은 동서 냉전 종식의 상징적인 한 장면이었다. 9월 30일 전격적으로 수교했고 12월 13∼16일 노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와 재회한다. 방문 당시 30억 달러 차관을 약속해 퍼주기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소련은 북한에 대한 원조를 끊고,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다.

○ “북방외교가 통일 앞당길 것” 기대

1990년 6월 7일 자 일본 마이니치신문에는 창 밖에서 한국 미국 소련이 한편이 되어 놀고 있고, 집 안에서 일본이 혼자 놀고 있는 내용의 만평이 실렸다. 외교적으로 고립됐던 일본은 “중국이나 소련에서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한국에 물어볼 정도였다.

냉전시대의 진영외교를 벗어나는 북방외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경제력 덕분이었다.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은 ‘사회주의 실패’를 직감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1988년 러시아행 비행기 안에서는 무거운 합판 식판에 식사를, 두꺼운 양은 주전자에 물을 담아 줬다”고 했다. 그만큼 소련 경제는 비효율적이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88올림픽이 생중계되면서 한국을 보는 동유럽권 국가들의 눈이 달라졌다. “한국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북방외교에 탄력이 붙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수교국은 100개국에서 130개국으로 늘었다. 김 전 수석은 “북방외교가 성공하면서 국방대신 국내 경제와 복지에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공 전 장관은 “북한과 대화가 안 되면 모스크바를 통해 평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김종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과의 인터뷰 및 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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