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한 소설 속 두 이야기, 한 감동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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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작가 전용 ‘베일리스 상’ 수상… 英 알리 스미스의 ‘양쪽이 되는 법’

영국 작가 알리 스미스(53)는 1997년 소설 ‘라이크’로 데뷔한 이후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여러 유명 문학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앙코르상, 휘트브레드상(코스타상의 전신) 등을 수상한 바도 있다. 그에게 더이상 문학상은 큰 감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베테랑 작가에게 지난달 3일 밤은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날 그의 여섯 번째 장편 ‘양쪽이 되는 법(How to be both·사진)’이 여성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상인 베일리스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올해 초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코스타상(문학 부문)과 골드스미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스미스가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로 여성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기 때문에 작가에게 베일리스상의 수상은 더욱 감명 깊었을 것이다. 그는 수상 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항상 대포에 맞서 싸워 왔다. 전통적으로 대포는 남성이었다. 이 책은 바로 남성에 맞서,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 온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책의 제목인 ‘양쪽’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독자에게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존 소설의 구성을 깨뜨려 약 5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주인공 두 명을 공존시킨 스미스의 상상력이다.

책의 주인공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였던 코시모와 21세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16세 소녀 조지. 책의 한 부분은 코시모의 이야기, 다른 한 부분은 조지의 이야기인데, 스미스는 두 가지 버전의 책을 만들었다. 독자는 어떤 버전을 선택하게 될지 알지 못하며, 선택한 버전에 따라 어떤 이는 코시모의 이야기를, 또 다른 이는 조지의 이야기를 먼저 읽게 된다.

코시모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미술적 재능을 보였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이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가슴을 천으로 동여매고, 프란체스코 델 코사라는 이름의 남자로 행세한다. 그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을 수 없지만 대신 페라라의 궁전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를 남긴다.

조지는 최근 급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포르노에 빠지고, 위험한 레즈비언 연애에 발을 담그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슬픔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는 어머니가 죽기 전 함께 여행했던 페라라의 궁전에 있던 프레스코화를 떠올린다. 그는 그림을 그린 프란체스코 델 코사라는 화가를 기억해 내고 화가의 다른 그림이 런던의 미술관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매일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향한다. 두 명의 여주인공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모두 여성으로, 사회적 약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성취하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하는 코시모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고 예술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조지는 서로 닮아 있다. 코시모는 여성성을 잃었지만 예술혼을 얻었고, 조지는 가족을 잃었지만 성장을 얻었다. 제목이 안내하듯 모든 일에는 양쪽 면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가디언의 기자 샬럿 히긴스는 “하나의 소설을 읽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을 접하는 듯하다”며 독특한 발상에 찬사를 표했다. 어떤 버전을 받게 될지, 책을 열기 전 두근거리는 마음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또 다른 선물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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