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32>합창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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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시간 ―박은정(1975∼ )


지휘자의 붉은 반점이 짙어졌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겠지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노래를 부른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불협하고 테너와 베이스가 제 목청에 넘어갔다 강당의 커튼이 휘날린다 신의 이름을 부를수록 세기말이 즐거웠던 사제처럼 우리는 간절하게 후렴구를 반복했다 지휘자의 얼굴이 신의 얼굴을 닮아간다 한줄기 빛 속에서 구체적이며 입체적으로 신의 얼굴을 본 적 있니? 악보를 넘기는 손들이 바빠지고 목청이 주춤거렸다 그럴수록 화음은 웅장하게 퍼졌다 지휘자의 슈트 자락이 펄럭인다 저 새들은 언제부터 울고 있던 거지? 저, 저 백치들은? 정오가 되자 길고 누런 잎들이 아래로 늘어졌다 입을 벌리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높은 곳으로 낮과 밤이 없는 곳으로 창세기의 새가 날아오른다 천상의 노래를 불러야 해 옆구리에서 투명한 날개가 돋아나도록 지휘자의 동공이 커지자 하품을 하던 여학생의 콧등 위로 파리가 앉았다 일곱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최초의 고공비행은 실패했다

성가대의 기량을 겨루는 전국 교회 대항 합창대회라도 앞두고 있었던 걸까. 언제 시작했는지 몰라도 연습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아침부터 따가운 볕이 한낮으로 치달아가는 한여름의 일요일, ‘지휘자의 붉은 반점이 짙어졌단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프라노와 알토는 불협하고 테너와 베이스가 제 목청에 넘어가니’, 속이 터지는 것이다. 화음이여, 화음이여, 성스러운 화음이여! 화음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한 줄기 빛 속에서’ ‘지휘자의 얼굴이 신의 얼굴을 닮아간다’. 신통치 않은 성가대지만 성심으로 그 지휘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간절하게 후렴구를 반복했단다.’ 눈앞의 신, 지휘자를 만족시키고 싶은 일념으로. 그런데 신이란 만족을 모르는 존재 아닌가? 신을 만족시키기에 인간은 너무도 미미한 존재 아닌가? ‘일곱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니 그 일요일이 저물도록 맹훈련을 받았나 보다. 온종일 ‘후렴구’를 반복하니 이제 ‘입만 벌리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지경. ‘천상의 노래를 불러야 해 옆구리에서 투명한 날개가 돋아나도록’! ‘지휘자의 동공이 커지자’ 지루하고 피곤해진 여학생의 콧등에 파리가 앉았단다. 천사의 날개와 파리 날개를 잇다니 이리 불경스러울 수가!

지휘를 따르지 못하는, 그런즉 합창에 맞지 않는 존재들, 새들과 백치와 소년소녀, 그리고 시인. 시인이 될 소녀의 성가대 연습 시간이 나른하고 발칙하게 그려졌다.

황인숙 시인
#합창 시간#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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