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농인들의 언어’ 수어 행정-재정 지원 늘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원성옥 국립한국복지대 교수
원성옥 국립한국복지대 교수
우리는 그동안 청각장애인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 장애를 보는 관점이 변함에 따라 청각장애인은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보는 것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편하게 정보에 접근한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이라는 말보다 농인(聾人)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잘 볼 수 있는 농인의 언어가 바로 시각언어인 수어(手語)이다. 그동안 수화라고 하기도 했지만 수화는 농인의 언어를 전체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보는 의미가 강해 수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원칙적이고 보편적이다.

사실 그동안 수어는 소수의 언어라는 이유로, 일반인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와 다르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돼 왔다. 교육 현장에서 한국어(우리말) 습득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교육용으로는 부적절한 언어라고 인식된 적도 있다. 그러나 수어는 몸짓이나 손짓으로 하는 보조적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름다운 천상의 언어도 아니다.

수어는 한국어나 영어 같은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농인들이 가장 편하고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보청기나 인공와우 시술을 통해 음성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이들도 나중에 수어를 접하게 되면 더 완벽하고 편한 의사소통을 위해 수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듣기에 어려움이 있어 부모로부터 언어를 습득하기가 곤란한 아이들은 수어라는 시각언어를 통해 더 쉽게 한국어를 배울 수도 있다. 또 농인들이 수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농인들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욱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농인의 언어권 보장은 농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제 곧 농인의 언어적 권리를 보장하는 수화언어법이 제정된다고 한다.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이 유명무실해지지 않으려면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는 정책과 행정·재정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 이미 유럽연합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수어와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농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수어 연구 같은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경제 강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비로소 소수의 권리를 인정한 수화언어법 제정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농교육계(청각장애 교육계)와 농인 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느낀다. 이와 더불어 실질적인 정책적 뒷받침과 행정·재정적 지원이 이뤄져 우리도 명실상부한 복지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서기를 기대한다.

원성옥 국립한국복지대 교수
#농인#수어#수화언어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