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성완종 게이트’는 하늘의 계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강력한 정치쇄신을 공약했다. 정치쇄신은 선거운동 때 최고의 기치 중 하나였다. 2003∼2004년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주도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임명해 기대치를 높였다. 그러나 집권 후 정치쇄신 공약은 국회가 할 일이라는 이유로 관심 밖으로 밀렸다.

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정치개혁을 화두에 올렸다. 15일 세월호 현안 점검회의에 이어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정치개혁’을 거론했다. 그러나 대선 때 내건 정치구조의 근본적인 쇄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검은돈이 오가는 정치 풍토를 수술해야 한다는 좁은 의미로 봐야 한다.

정치쇄신 외면한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꺼낸 속내는 짐작이 간다.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사람들이 2007년 경선자금과 2012년 대선자금으로 수억 원을 받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일부 심리학자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체험하는 ‘부성(父性)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것으로 본다. 이런 사람들은 극도의 자기 절제를 하는 특징을 지닌다. 누구를 위한 것이었든 불법 자금에 엄격하게 선을 긋고 척결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니 야당이 비판한 유체이탈 화법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은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4년 중임제 개헌 공약을 내건 바 있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과 국회의원 일부 특권 폐지는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 국회 차원의 정치개혁은 지지부진한데 정치개혁의 골든타임은 큰 선거가 없는 올해뿐이다. 그러나 개헌을 공약하고 집권 후 추진한 대통령은 없다. 개헌 논의의 물꼬를 막은 박 대통령 역시 근본적인 정치개혁은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정치구조 개혁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말했다.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와 소선거구제에서 선거는 ‘적대(敵對)의 정치’와 승자 독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성공은 나의 실패, 상대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라는 것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승리하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되고 검은돈까지 동원하게 된다.

청와대發 정치개혁 나서라

시한을 넘긴 노동시장 개혁을 보고 박 대통령은 무력감을 느꼈을 법하다. 야당이 반대하면 공무원연금 개혁도 무망하다. 정치의 병목현상은 번번이 개혁을 가로막는다. 시대가 ‘타협의 정치’를 위해 정치구조 개혁을 요청하는지 모른다. 타협의 정치가 이뤄지면 여당이 기업을 설득하고 야당이 노동계를 설득하는 협조가 가능하다. 그래야 노동시장 개혁 같은 난제도 타결된다.

한국의 정당은 개혁과 혁신을 입에 달고 다닌다. 여야 어느 곳에도 ‘새 정치’는 없는데 여당도 새누리당, 야당도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성완종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 지금은 여권에 집중된 수사의 칼날이 야당에도 미칠 것이다. 부패 문제로 깊은 잠에서 깨어난 정치개혁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정치개혁이 촉발될 수 있어도 완성될 순 없다. 박 대통령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청와대발 정치개혁’의 판을 키운다면 좋을 것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성완종 리스트#정치쇄신#정치개혁#박근혜 대통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