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07>잔소리에 담긴 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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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다니지 좀 마. 술은 멀리 좀 해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아이유의 노래 ‘잔소리’의 일부다. 하지만 잔소리에 질린 남자라면 아이유가 집에서 기다린다한들 귀가가 싫을 수도 있다.

잔소리가 좋은 의도라는 걸 누구나 안다. “술자리 피하고 집에 일찍 와.” 그러나 소용없을 때가 많은 말이기도 하다. 급작스러운 회식도 그렇거니와, 친한 동료가 한잔하자는데 거절하기 어렵다. 게다가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만 된다면 아내는 왜 홈쇼핑에서 후회할 물건을 자꾸 사들인단 말인가.

얼마나 잔소리가 지겨웠으면 서양에선 법으로 금지했던 적도 있다. 앨런-바버라 피즈 부부의 저서 ‘거짓말을 하는 남자,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면 19세기까지 미국과 유럽에서는 잔소리꾼 아내를 ‘물고문 의자’로 처벌했다. 심한 여자에게는 철가면을 씌우기도 했다.

하지만 잔소리는 탄압을 견디며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말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잔소리는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여자는 잔소리부터 끊는다.

그런데도 잔소리가 남자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는 웬만해선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아내의 추궁에 “안 그럴게” 하고 덮으려 해봐야 “잘못을 알면서 왜 그랬어?” 쪽으로 방향만 틀어 계속된다.

‘생각해주는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여성이 잔소리를 통해 쾌감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옳은 말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월감이다. 성취감이 다시 잔소리를 불러내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내가 같은 말을 표현만 바꿔 반복할 경우 남편은 ‘또 시작이구나’ 하며 귀를 닫는다. 소용도 없는 얘기를 뭐 하러 자꾸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응해봐야 피곤해지므로 결국엔 입을 닫고 만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아내의 불타오르는 마음에 휘발유를 붓는다. 자기 진심이 남편에 의해 튕겨 나왔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잔소리를 애용한다. 이 점에서 잔소리의 깊은 속내는 ‘들어 달라’는 것이다. 여성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 자기 몫만큼의 말을 누군가에게 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할 말(총량 기준)을 잔뜩 머금은 그녀의 사정을 감안해 잔소리를 다른 주제로 슬며시 돌려주는 것도 방법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별다른 일 없었어?” 하고 묻는 식으로 말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차츰 기분이 풀린다. 아내의 말 총량에서 잔소리의 비중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결국 남자 하기 나름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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