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49> 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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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1980∼)

말하렴
너에게 마지막 밤이 추적추적 내려올 때

너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너는 이야기를 눈처럼 무너뜨리거나 너는 이야기를 비처럼 세울 수 있다

그 질서 있는 밤에
너에게 안개 또한 펄펄 내려올 때
들어보렴
맨 처음 네가 간직했던 기도를

너의 공포를
너의 공허를
너의 공갈을

점점 노래하렴
너의 구체적인 세계는 녹아내리고
너는 우리가 만질 수 없게 있어지지만
신앙과 믿음은 없거나 없어지는 것
그건 얼마나 적확한 죽음의 신비로움이겠니

너에게 먹물 같은 첫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한순간 네가 살아 누워 있을 때
일 초 후
스물네 시간 후
삼백육십오 일 후

결국 쓸모없어질 기억들을
끝까지 기억하렴
아침까지 둘러앉은 술고래들을
평화로운 낭독의 데모를
한밤에 나눈 구강성교를

그래, 시옷
지난밤 거위 떼처럼
우리는 해야 할 말을 모두 다 했단다

침묵하렴

시인이 제목에 붙인 각주의 한 구절 ‘나의 끝말이 너의 죽음에 대한 주례사가 됐으면 좋겠다’를 읽고, ‘ㅅ’이 많은 청소년이 입에 달고 사는 간투사, ‘씨’로 시작되는 비속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말이 세상을 뜨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단 두 글자가 새겨진 통렬한 묘비명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이 치닫다가, 시의 뒷부분 ‘그래, 시옷’에서 멈췄다. 아, 누군가의 이름이었나….

‘너’는 화자에게 소중한 타자일 수도 있고, 화자 자신일 수도 있다. ‘마지막 밤이 추적추적 내려올 때’는 일생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지. ‘맨 처음 네가 간직했던 기도’에 이어, 너의 공포, 너의 공허, 너의 공갈! ‘너’의 삶은 그러한 것이었단다. ‘점점 노래하렴’, 삶이 이야기(사연)라면 죽음은 노래일 테다. ‘한밤에 나눈 구강성교’는 실제 구강성교일 수도 있고, 성교하듯 뜨겁게 얼크러진 대화일 수도 있다. 주어진 삶을 그렇게 진진하게, 가슴을 태우며 온몸으로 전력투구 사느라 탈진한 사람의 애절한 담담함으로 화자는 떠나는 ‘너’를 다독인다. ‘우리는 해야 할 말을 모두 다 했단다’, 그러니 이제 ‘침묵하렴’. 편히 쉬렴.

이 시가 실린 시집 ‘글로리홀’은 ‘퀴어한 존재로서 자기정체성에 대한 탐구’(시집 해설에서)다. 시인은 강렬한 시어로 치밀하게 ‘성 소수자’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게 바로 나, 바로 인간’이라고.

황인숙 시인
#ㅅ#김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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