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詩 두편에 담긴 ‘슬픈 탈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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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없는 나라 찾아, 고향을 떠난다 -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고경호씨 作
오늘도 소식없이… 엄마 어디 있나요 - 고경희씨 재입북 부른 딸의 노래

‘용남이 떠나고 은향이 너도 떠난다/정든 고향 두고서 어데로 떠나가느냐/자유와 인생에 등불의 빛을 따라서/눈물 없는 나라를 찾아서 고향을 떠난다…’

탈북했다가 딸이 보고 싶어 북한에 돌아간 고경희 씨(39·여)의 친오빠 고경호 씨(45)가 본보에 이런 자작시를 보내왔다. 경희 씨는 2012년 북한에 돌아간 뒤 지난해 1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알려진 인물이다. 경호 씨는 지난해 12월 탈북해 올해 3월 태국의 난민 수용소에서 이 시를 썼다. 한국에 온 건 3월 말이다. 경호 씨는 시에 이렇게 썼다.

‘남편도 떠나고 자식과 아내도 떠난다/조상의 뼈 묻힌 고향땅 두고서 떠난다/진실 없는 고향에서 권력자들 때문에/가정도 이별의 고통을 당하며 떠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몇 번 지나고/달라진 건 없구나 세월은 그대로 흐르며/백성들 착취와 원한의 소리는 높아만 진다/사람들 굶주려 죽어도 사람들 탄압에만/미쳐 날뛰는 너희들 때문에 고향을 떠난다’

경희 씨는 평양 기자회견에서 “공화국에서는 천벌을 받아 마땅할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따뜻이 안아주었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정치범 교화소에 수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호 씨는 동생이 북한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노래가사도 보내왔다. 2012년 당시 북한에 있던 경호 씨가 중국 전화로 한국에 있던 경희 씨와 통화하다 “딸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자 딸(14)은 아리랑 노래를 개사해 엄마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경희 씨는 이를 듣고 북한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가사엔 ‘어머니 어디 있나 보고나 싶어/오늘도 소식 없이 어디 있나요… 꿈에도 보고픈 우리 어머니/어머니 만날 날 언제일까요’ 등이 담겼다.

경호 씨는 “동생 딸이 고향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자 수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며 “심지어 양강도의 국가안전보위부 사람들도 노래를 듣고 울었다”고 전했다.

이달 7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는 없고 노동교화소는 있다”며 “북한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호 씨는 본보에 보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 말이 맞다면 김 위원장이 용서해준다며 기자회견장에 내세운 경희는 어디에 보냈느냐”고 물었다. 또 “인권이 보장되고 먹고살기 힘들지 않으면 누가 사선을 헤치며 고향을 떠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한 뒤 이런 시를 썼다.

‘분단의 상처로 갈라진 하나의 민족아/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동포들 만나는/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마음을 합쳐나가자…’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탈북#고경희#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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