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사랑은 조산사처럼 중요한 ‘그 무엇’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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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

1950년대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활약하던 조산사 이야기를 다룬 BBC의 ‘콜 더 미드와이프’. 영국 BBC TV 화면 촬영
1950년대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활약하던 조산사 이야기를 다룬 BBC의 ‘콜 더 미드와이프’. 영국 BBC TV 화면 촬영
영국 BBC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의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누가 이런 드라마를 한 시간씩 앉아서 보나 싶었다. 1950년대 런던에서 활약하는 조산사들 얘기를 다룬 드라마로, 매회 아기를 받고 또 받는다. 배 위에서, 건어물 창고에서, 길바닥에서, 거꾸로 누운 아기부터 목에 탯줄이 감긴 아기까지. 제목의 ‘미드와이프’는 영어로 조산사를 뜻한다. 제목을 번역하면 ‘조산사를 불러줘요!’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많았다. 올해 방영된 세 번째 시즌 마지막 회는 영국 내 시청자가 800만 명에 달했다. 점유율은 30%에 가깝다. 내년 시즌4 방영도 일찌감치 확정됐다. 영국에서는 조산사라는 직업이 재조명되면서 관련 학과 지원자가 늘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배경인 런던 이스트엔드는 당시 런던의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에는 베이비붐이 찾아왔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임신부들에게 수녀원에 소속돼 활동하는 조산사들은 거의 유일한 조력자였다. 전쟁이 끝난 뒤, 가난했지만 긍정의 기운이 흘러넘치던 시대상이 BBC다운 철저한 고증과 함께 드라마에 그대로 담겨 있다. 깔때기처럼 생긴 청진기로 쌍둥이인지 대번 알아맞히는 조산사들의 실력과 웬만한 건 다 무료로 되는 당시 영국의 의료 서비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배경에 깔리는 당대 유행가와 여자들의 빈티지 드레스도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결혼과 아이를 포기한 ‘삼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세상에 형편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를 낳는 이스트엔드의 가난한 엄마들은 좀 대책 없어 보이기도 한다.(드라마에는 24명의 자녀를 둔 집도 나온다) 하지만 사랑에 상처 받고 자포자기한 채 조산사가 된 주인공 제니 리(제시카 레인), 마치 2014년의 우리 같은 그녀는 그 대책 없는 임신과 출산에 숨은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은 어떤 집이든 가장 기쁘고 또 긴장되는 순간이면서, 아기의 운명에 따라서는 가장 슬픈 순간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 포착된 숱한 희로애락, 부부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있어 가능한 그 모든 순간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드라마 속 내레이션대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구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사랑은 마치 조산사처럼, 삶의 중요한 무언가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콜 더 미드와이프#조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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