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팔레스타인의 비극… 눈뜬 자들의 도시는 잔인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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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자들의도시(조제사라마구·해냄·1998년) 》

캄캄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감은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빛 한 점 없는 공간에 켜켜이 쌓인 먼지처럼 어둠이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현기증이 났다. 불현듯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곳은 고백건대 소개팅 장소였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일명 ‘블라인드 레스토랑’이었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손을 내밀어 테이블 위를 조심스레 더듬었다. 접시와 포크, 나이프, 스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약속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視覺)을 잃고 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아련하게 들리는 음악에 한참 동안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됐다.

이윽고 약속 상대가 도착했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주 앉을 필요도 없어 나란히 앉았다. 목소리는 더 가깝고 분명했다. “무슨 색 옷을 입었어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토록 집중해 본 건 처음이었다. 두 시간 정도 앞을 볼 수 없게 되니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오래전에 읽었다. 이 소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눈먼 자가 된다. 장(챕터) 구분이 없을 뿐 아니라 따옴표, 물음표, 느낌표도 없다. 문단도 제멋대로다. 집중하지 않으면 화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된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이들은 마음이 먼 사람들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340명 이상이 사망했다. 충격적인 건 이스라엘 주민들이 언덕에서 공습 장면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잔인했고, 웃고 있었다. 슬픈 자화상을 보면서 두 눈이 부끄러워졌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눈먼자들의도시#조제사라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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