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63>이 맛있는 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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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있는 욕!
―이가을(1964∼ )

근엄하신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날마다 가마솥에 욕을 끓인다
가마솥 절절 끓을수록 욕설이 구수하다
손님 탁자마다 돌아다니면서 욕으로 안부를 건넨다
할머니 욕해주세요∼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욕설을 얹어야 국밥이 맛있다
국밥을 비우면 국밥 그릇에
조금쯤의 반성이 남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내일이
아이고, 이 배라먹을 놈아
염병할 놈! 쯧쯧, 저 재수 없는 놈을 어쩐댜―
불쌍시런 놈아 잘 처먹고 잘 살으랬지?
옜다, 이놈아 국밥이나 잘 처먹어라―
칼보다 펜보다 강한 할머니의 욕을
가슴에 새긴다
나를 때리는 욕을 목구멍에 삼킨다
들을수록 통증이 오지만 통증이 멈추면
새살이 올라오는,
오늘도 욕 먹으러 국밥집에 간다


욕은 욕먹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불쾌한 자극을 준다. 그런데 욕쟁이 할머니가 꾸리는 이 국밥집에는 단골이 많은 듯하다. 그들은 마조히스트인가? 왜 욕을 들으며 밥을 먹을까? 할머니의 욕이 비속어이기는 하지만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정이 뚝뚝 흐르기 때문이다.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쯧쯧, 저, 재수 없는 놈을 어쩐댜’ ‘불쌍시런 놈아 잘 처먹고 잘 살으랬지?’ 할머니의 욕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배어 있다. 하는 일마다 재수도 참 없는, 사는 게 늘 그 타령인, ‘불쌍시런 놈’들은 친할머니 같은 할머니의 욕을 듣고 펄펄 끓는 국밥을 먹으며 속이 확 풀리고 배가 든든해진다.

욕도 해본 사람이 잘할 테다. ‘들을수록 통증이 오지만 통증이 멈추면/새살이 올라오게’ 하는 ‘맛있는 욕’을 하는 할머니. 이 욕의 달인이 끓여낸 국밥도 맛있을 테다. 욕 좀 먹으려고 맛없는 국밥을 먹으러 가지는 않을 테니까. 욕은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한다. ‘갑’이 ‘을’에게 한다. 손님은 ‘갑’인데 ‘을’인 밥집 할머니에게 기꺼이 욕을 먹으며, 대개 ‘을’로 살아가는 손님들은 어떤 균형감을 맛보리라.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군과 신라군이 욕 대결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쩜 그렇게 기상천외한 욕들을 ‘차지게’ 쏟아내던지 포복절도했었다. 세계 모든 욕에는 성(性)과 관련된 게 흔한데, ‘황산벌’ 욕의 성찬에는 그게 없었다. 그래서 관객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시원스레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욕은 웃음을 주는 해학이기도 하다. 욕도 창의적으로 하면 좋을 테다.

황인숙 시인
#욕쟁이할머니#국밥#이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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