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무상급식 공약은 과연 옳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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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형 바꾸었으나 교육 곳곳은 상처투성이
붕괴 걱정되는 학교 건물 보수 시급한데도 손도 못 대는 결과를 초래
6·4지방선거에서도 지나친 쏠림 경계해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던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새정치민주연합 경선에서 탈락했다. ‘전면 무상급식’ 공약으로 한때 주목받았던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민심의 변화무쌍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4년 전 이맘때 치러졌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대 관심사는 전면 무상급식이었다. 야권이 내건 무상급식 공약은 김 전 교육감의 2009년 교육감선거 공약에서 따온 것이었다. 무상급식의 위력은 컸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드러내놓고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2일에 치러진 선거는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당시 야권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으로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부르며 실의에 빠져 있었다. 암흑 속에서 재기의 희망을 선사한 김 전 교육감은 야권의 구세주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그의 무상급식 공약은 단순히 학생들 점심 먹이는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정치의 지형을 크게 바꿔놓은 거센 폭풍으로 이어졌다. 이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야권 소속 구청장과 시의회에 포위당한 오세훈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하면서 주민투표를 통해 승부수를 던졌으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오 시장이 떠난 서울시장 자리에 안철수 씨가 박원순 씨를 추천하면서 이들은 차례로 정계에 진입한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첫 업무는 무상급식 예산지원 서류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보편적 복지와 공정사회 등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달궜던 논쟁도 되짚어 보면 무상급식 문제가 기폭제였다. 김 전 교육감은 2010년대 전반기에 뜨거운 화두를 던진 주인공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정치권 그들만의 탁상공론이었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무상급식이 시행되는 현장인 학교에서는 걱정스럽고 기막힌 일들이 벌어져 왔다. 엄청난 규모의 무상급식 예산이 블랙홀처럼 다른 교육예산을 빨아들여 학교교육 전반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전면 무상급식 예산으로 올해 지출하는 돈은 5500억 원이다. 여기에 유치원생 1인당 월 20만 원씩 학부모에게 지급하는 누리사업 예산이 또 5500억 원 소요된다. 뭉칫돈이 교육복지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정작 교육 자체를 위해 사용할 예산은 연간 36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이 돈으로 121만 명에 이르는 서울 학생을 위해 교육 활동을 벌이고, 낡은 시설을 고쳐야 하며, 학교폭력도 예방해야 한다. 학생 1인당 30만 원, 한 달에 3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부실 교육은 필연이다.

무상급식 등을 위해 가장 먼저 깎여나간 돈은 학교 시설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하는 비용이었다. 어느 교육감은 “학교와 체육관, 화장실을 고치거나 지어야 할 돈을 아이들 점심 먹이는 데 모두 투입하고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한국 교육은 조만간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전한다.

국내 학교 건물은 1950년대 베이비붐 이후 학생 수가 급증한 1960, 7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30년이 넘은 학교 시설들이 수두룩하다. 그 시절 흔했던 날림 공사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제 붕괴되지나 않을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러나 교육계 내부에서조차 그동안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무상급식을 무조건 달성해야 할 절대 목표인 것처럼 떠받들어온 탓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의 관심은 급속히 안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김 전 교육감이 이번 선거에서 조기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도 이런 민심 변화와 연결돼 있다. 그는 무상급식 후속으로 ‘무상버스’ 공약을 내세웠으나 새정치연합이 최근 발표한 10대 선거공약에는 ‘무상’이란 단어가 아예 빠져 있다.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안전이다. 4년 만에 선거의 키워드가 확 바뀌었다.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또 다른 쏠림 현상이다. 과거 무상급식에 매달려 안전 등 다른 것을 몽땅 희생했던 식의 잘못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학교 안전의 확보를 위한 예산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배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육예산 집행의 전체적인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다. 유권자들은 야권이 4년 전 득표 전략으로 무상급식을 소리 높여 찬양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학생들의 안전 문제를 한때의 시류로 접근한다면 큰 역풍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무상급식#6·4지방선거#학교 건물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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