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44>당신과 나 사이에 2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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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에 2
―장경린(1957∼ )

그것은 나에게 없습니다
당신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에도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것은

당신과 나 사이에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에 늘 이렇게 있습니다
6과 7 사이
6과 6 사이에 있습니다
존재와 언어 사이를 지나

환상과 현실 사이로 가볼까요
팔 하나에 손가락 다섯
하나의 가슴에 젖꼭지 둘
(이 환상적인 진화가 시큰둥하다면)
예쁜 배꼽에
피어싱 셋!
배꼽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고리
고리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허공
이렇게 한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것은

아이가 다가가 꼬리를 쓰다듬자
자신이 다람쥐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나는
가을처럼

그것은


‘그것은 나에게 없습니다/당신에게도 없습니다/그것은 그것에도 없습니다/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그것은’ 화자는 은밀한 어조로 부드럽게 수수께끼를 건네며 도입부부터 독자를 집중시킨다. ‘그것은’ 무엇일까? ‘당신과 나 사이에 있다’는 그것은? ‘보시다시피 여기에 늘 이렇게 있습니다’ 보시기는 뭘 보신다는 거야? 조급해하지 말자. 이제부터 화자가 보여 주신다. ‘6과 7 사이/6과 6 사이’ 보이시는가? 느닷없이 6은 뭐고 7은 뭘까? 6은 곡선, 7은 직선? 숫자는 아무래도 좋으리라. 중요한 건 그 ‘사이’이다. ‘존재와 언어 사이를 지나//환상과 현실 사이로 가볼까요’ 당신은 존재이며 환상이고, 시인인 화자는 언어이며 현실이다. 반대로 화자가 환상일 수도 있다. 환상이 현실에 바짝 다가가려는 힘으로, 비어 있던 둘 ‘사이’에 ‘팔 하나에 손가락 다섯/하나의 가슴에 젖꼭지 둘’이, 사뭇 따뜻할 몸뚱이가 생긴다. 마치 외로운 아담 옆구리에서 그가 꿈꾸어온 여인 이브가 태어나듯.

이 시는 언어의 마임이다. 마임(mime)은 무언극이다. 그런데 언어의 마임이라니? 관객의 눈이 마임 배우의 몸짓에 달라붙듯 독자는 의식의 눈을 뜨고 시어 하나하나에 전 상상력을 작동하여 따라가게 된다. 언어유희, 관념의 유희가 눈에 잡힐 듯 생생하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간지러운 듯 허무하기도 한, 독특한 아치(雅致)가 있는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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