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그림서 얻는 통찰… 名畵, 살아온 만큼 보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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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내가 앉은 자리에 내일 당신이 앉을지도 모른다. 인물만 아니라 식탁들도 완전한 형태가 하나도 없다. 화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고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고. ―화가의우연한시선(최영미·은행나무·2013년) 》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드영박물관을 찾았다가 우연찮게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의 대표작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왕립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이 마침 세계투어 중이었다. 소설, 영화로만 접하던 작품을 뜻밖의 곳에서 보게 되다니….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경배하듯 그림을 올려다봤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는 때로는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못한 감정을 느낄 때 더 커진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쓴 이 책은 이런 재미를 알려주는 미술 에세이다. 작가는 그림에 대한 단편적 지식이나 비평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인다운 깔끔하면서도 감수성 짙은 감상문을 통해 그림 속 사물과 사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데서 더 나아가 “사는 만큼, 살아온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가 있듯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라도 큰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자연과학이나 철학과는 다른 미술의 힘이라고 했다.

에세이 23편 중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 ‘세탁부’를 다룬 글에서 이 점이 돋보인다. 작가는 그림 속 눈, 코, 입이 뭉개진 채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 세탁부의 모습이 마르크스의 ‘자본론’ 못지않게 19세기 유럽 노동계급의 열악한 삶을 고발한다고 했다.

“아직 계단을 오르기도 힘든 어린아이의 손을 끌고 집으로 귀가하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한가로이 예술을 논할 수 없다…자본론은 잊어도 세탁부는 쉽게 잊을 수 없다. 화집에서 우연히 스친 그녀의 뭉개진 얼굴은 언제든 또렷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림과 경제학의 차이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화가의 우연한 시선#최영미#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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