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 <5> “천안함 폭침 희생자 중엔 바둑 배우던 수병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14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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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제공김효정 프로기사 회장은 “어린 시절 바둑을 끊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사랑할 줄 알게 됐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만큼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김효정 프로기사 회장은 “어린 시절 바둑을 끊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사랑할 줄 알게 됐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만큼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찼다. 그리고 활달했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도 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는 1032명의 이름이 저장돼 있고, 카카오톡 친구만 778명이다. 한국기원 최연소, 그리고 첫 여성 프로기사회장 김효정 2단(33)이다. 임기 5개월을 맞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회장을 6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4층에서 만났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녀의 휴대전화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여러 차례 울렸다.

먼저 요즘 하는 일을 물었다. "요즘요, 어떤 때는 하루에 회의를 세 번 할 때도 있어요. 프로기사회장이란 자리가 한국기원의 여러 회의에 당연직으로 참석해야 하고 각종 행사에도 얼굴을 비춰야 해요. 프로기사들의 의견을 대변하다 보니 집행부인 한국기원과 다툴 일도 있어요. 그저께는 양재호 사무총장과 큰소리를 내고 싸웠어요(싸운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제는 싸움닭이 된 것 같아요."

그녀가 하는 일은 프로 기사 291명의 의견을 대변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예선전 대국료 문제와 국제기전 대국시간 문제로 한국기원과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기원이 국제기전 예선 대국시간을 오전 9시로 잡은 데 대해 "중국 기사들은 숙소가 한국기원 근처에 있어 대국장에 오는 데 문제가 없지만 우리 기사들은 길게는 2시간이나 걸리는데 9시가 말이 되느냐"고 따져 대국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추게 만들었다. 또 대국료가 없어 자비 출전해야 하는 바이링배에 대해서는 기사들에게 비행기 삯의 일부라도 지원해달라고 집행부에 요청해놓고 있으나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매달 한 차례 열리는 대의원 총회에서 기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대의원은 현재 25명. 박종렬 이홍렬 정수현 사범 등 시니어 그룹을 비롯해 김성룡 김영환 이상훈 사범 등 중견 그룹, 그리고 박지연 류동완 등 젊은 그룹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이런 공식 통로 외에도 개인적으로 기사들을 만날 때가 많다. 전화로 불만을 토로하는 기사도 많다고 전했다.

요즘 걱정은 기전이 자꾸 줄어들고 바둑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파이가 줄다보니 기사 생활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시니어 세대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생활이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30, 40대 프로기사들이에요. 자식을 한창 키울 나이인데 수입이 예전 같지 않거든요. 한마디로 낀세대예요."

그래서 요즘 그녀는 프로기사들의 활로를 바둑 보급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보급 활동은 한국기원이 주축이 돼 하고 있지만 이를 서포트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교양바둑을 채택하도록 하거나 초중학교 방과 후 바둑교실, 다문화 가정 바둑보급에도 도움을 주려 한다.

"바둑 보급을 위해서는 약간의 프로기사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사들이 대개 말솜씨가 떨어지는데 스피치 강의나 예절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물론 돈이 필요해 집행부를 설득해야 하지만요."

그녀는 바둑계 파이를 늘리는 일이라면 어느 자리든 사양하지 않는다. 기전 프로모션 자리나 스폰서가 불러주는 자리 등이다. 방송에서 다져진 매끄러운 말솜씨와 여류 기사 1위의 술 실력이 빛을 발한다(그녀는 저녁까지 이어진 인터뷰 자리에서 폭탄주 10여 잔을 거뜬히 마셨다. 그녀는 "한 수 물릴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했다가 이내 "이 이야기는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그녀로서는 그냥 해본 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지난해 10월 31일 제31대 프로기사 회장에 당선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그것도 여성이 불과 9표 차로 이긴 것은 이변이었다.

프로기사 회장에 왜 출마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선거운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출마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둑계 주변 인사들이 출마를 권유했다. 지금 바둑계가 위기라면서 걱정했다. 어떤 면에서는 여성이란 점이 문제를 푸는 데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선거 한 달 전 출사표를 던졌다. 기왕 할 바에야 잘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 선거처럼 포스터도 만들어 기원에 붙이고 프로기사들에게도 보냈다. 포스터에는 6개월 된 아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자신의 공약도 함께 넣었다. 그러고는 시니어 선배들은 찾아가 불만이나 의견을 듣고 젊은층도 파고들었다. 선거 당일 그녀는 연설 대신 프레젠테이션을 택했다. 세대간의 소통을 강조하는 한편 직장·대학·초중고에서 바둑의 저변을 확대하며 입단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공약을 PPT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제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저 친구가 준비가 돼 있구나'하는 느낌을 줬기 때문일 거라고 봐요. 프로기사 회장을 그만둘 때까지 프로기사 직을 버린다는 각오로 일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군부대 바둑 보급의 개척자다. 2009년부터 시작된 군부대 바둑보급에 여자기사회가 참여한 것은 그녀의 입김이었다. 군인들이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토요일뿐이어서 그녀는 매주 토요일을 군에 바쳤다. 철원 부산 진해 평택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부대도 육해공군은 물론 해병대까지. 진해로 갈 때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차를 타고 오전 10시까지 군부대에 도착했다. 자신과 함께 바둑 보급에 나선 여자 기사는 강승희 김선미 이다혜 등인데 인기가 많았다며 "배윤진 3단은 육군 ROTC 장교와 교제해 결혼에 골인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젊은 병사들이 금방 바둑이 늘어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군부대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김효정 2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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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김효정 2단.
기억나는 부대로는 평택 2함대를 꼽았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희생자 중에는 바둑을 배우던 수병도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연락하는 장교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예산문제로 군부대 바둑보급이 주춤한 상태.

그녀가 바둑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마 5단 실력의 아버지가 다섯 살 위 오빠와 세 살 위 언니만 바둑을 가르치자 졸라서 배웠다. 오빠는 학업으로 돌아섰지만 언니 현정 씨(36)는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 현재 일본기원 소속 프로 3단으로 활동 중이다. 효정 씨는 당시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바둑 꿈나무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승부가 싫다"며 바둑을 아예 끊었다. 당시 아버지가 무척 실망해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1년 반 만인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다시 바둑돌을 잡았다. "내가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해보니 기재가 있는 것은 나보다 너였다"는 언니의 충고 때문이었다. 다시 바둑돌을 잡으면서 그녀는 중학교를 자퇴했다.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일본 사무라이처럼 분당기원이나 아마추어 강자가 있는 기원을 아버지와 함께 찾아가 바둑을 뒀다. 실전 훈련이었다. 그러고는 1년 반 만인 1996년 프로 기사가 됐다. 하지만 프로가 되고 성적이 좋지 않아 힘들었다. 연구생이나 바둑도장에서 배운 정통파들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졌던 것.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기원 제공김효정 2단의 취미는 테니스다. 20대 때 테니스를 치다가 쉬고 있는 모습.
한국기원 제공
김효정 2단의 취미는 테니스다. 20대 때 테니스를 치다가 쉬고 있는 모습.

입단 3년 뒤인 1999년 바둑TV에서 진행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윤영선 초단이 방송을 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한 것은 그녀가 사실상 처음이다.

방송을 하면서 그는 대중 앞에 서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지 깨달았다. 그래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또 중고교의 황금 같은 학창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중고 과정의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2학년 때 한문학과를 선택했다. 논어 맹자를 배우고 당시(唐詩) 송시(宋詩)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안대회 교수님의 강의가 기억난다고 했다. 요즘도 정민 교수(한양대)의 한시 이야기를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는 바둑이 아닌 다른 세상에 살고 싶었다. 프로 기사도 어렵고 방송도 만만치 않았던 그때, 그녀는 테니스에 빠져들었다. 군부대 바둑보급 시절에도 장교들과 테니스를 했고, 지금도 가끔 테니스를 한다. 요즘은 골프를 더 많이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 바둑을 끊어봐서 알지만 바둑은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며 "예전엔 즐기질 못했는데 이제는 사랑할 줄 알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경찰대를 나온 훈남으로 역시 바둑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녀와는 5점 치수.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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