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9>설날 친척이 귀띔해 준 유망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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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나폴레옹이 죽었다.”

1814년 2월 21일 월요일 아침, 군복을 입은 사람이 영국 남부 윈체스터 거리 여관을 돌아다니며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이 승리했다”며 이런 말을 퍼뜨렸다. 긴 전쟁에 지친 영국인들은 단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세마포어 텔레그래프’라는 수신호 장비로 다른 지역으로 이 소식을 전파했다. 정오 무렵 영국 전역이 연합군 승리 소식으로 들끓었다. 증시에선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며 주가가 급등했다. 그런데 오후 들어 정부가 “소문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드 베렝거라는 주가 조작범이 벌인 사기극에 온 나라가 휘둘린 것이다.

설날 차례를 마치고 친척들이 둘러앉아 나누는 주식 정보 중 일부도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 작전에 연관돼 있다. 설날 나누는 주식 정보가 10개라면 8개 정도는 이미 시장에 널리 알려져 있는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재미 삼아 자기 의견을 덧붙여 토론하다가 ‘부자 되세요’ 하는 덕담으로 끝내면 그만인데 문제는 실천에 옮기다가 대박은커녕 ‘쪽박’을 차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설날 나누는 주식 정보 10개 중 전혀 새롭지 않은 8개를 빼고 나머지 2개 가운데 1개는 ‘작전’의 후반부쯤에 연루돼 있는 주식인 경우가 많다. 나폴레옹 사망설을 퍼뜨린 주가 조작범이 윈체스터 거리 여관(기관투자가)을 찾아다닌 시점은 작전을 시작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친척들이 알려 준 주식 정보가 그런 초기 작전 단계에 있다면 주식을 사더라도 나중에 되팔아서 손해를 최소화하거나 운 좋게 차익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차례상 앞에서 나누는 작전 관련 주식 정보의 대부분은 텔레그래프(주식정보망)를 통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된 ‘끝물’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주식을 산다면 원금을 건지기 어렵다.

그럼 ‘작전주’를 어떻게 걸러 낼 수 있을까?

먼저 친척이 추천한 유망주가 증권사 분석 대상인지 보라. 포털 사이트 증시 코너나 증시 전문 사이트에서 해당 주식을 검색했는데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나 목표주가가 나와 있지 않다면 일단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증권사가 실적이나 영업 안팎의 요인을 감안해 분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어 정보의 출처에 주목하라. 만약 친척이 ‘내가 잘 아는 증권 전문가가 하는 말인데…’라며 추천했다면 이미 몇 차례의 폭탄 돌리기가 진행됐을 개연성이 크다.

친척이 알려 준 주식 정보 유형 중 믿을 만한 ‘숨겨진 진주’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누구의 말을 빌리거나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분석을 해서 그 결과를 담담하게 알려 주는 정보다. 예를 들어 친척 중에 경험 많고 신중한 의사가 있다고 하자. 그가 좋은 제약회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 보통의 소비자들은 광고로 유명해진 대중적인 제약회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의사는 현재 시판 중인 약의 효능, 연구 중인 의약품 목록, 신약 개발 가능성까지 함께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약의 수요자인 환자들의 반응과 회사의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역량을 현장에서 축적한 덕분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보석’ 같은 주식을 추천받았다 해도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르진 않았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주가 수준은 주가수익배율(PER·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로 알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주가가 순이익에 비해 얼마나 고평가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보통 6, 7배 이하라면 앞으로 주가가 더 오를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배율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주식을 추천한 친척의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면 성장성이 검증됐다고 간주해도 된다.

추천 주식을 사기 전에 해야 할 검증 작업이 또 있다. 주가가 저평가돼 있으면서도 영업을 통해 현금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분석해 둔 ‘EV/EBITDA’라는 지표를 보면 된다. 기업의 가치(EV)를 기업의 현금창출능력(EBITDA)으로 나눈 것인데 보통 7배 이하면 투자 매력도가 높다고 본다.

200년 전 영국에서 이맘때쯤 일어난 ‘베렝거 사건’ 당일의 주식 거래량은 110만 파운드(약 20억 원)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1000억 원이 넘는다. 피해가 커진 것은 전쟁으로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자신을 연합군 대령이라고 포장한 사람의 유언비어가 달콤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연휴가 끝난 월요일, 돈의 세상도 어수선하다. 누구보다 믿는 친척이 추천해 준 주식이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돈과 친척을 모두 지키려면 투자를 서둘지 말라.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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